주간동아 492

2005.07.05

허걱! 사진 속에 귀신이 …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6-30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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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걱! 사진 속에 귀신이 …
    허걱! 사진 속에 귀신이 …
    심령사진은 사진 탄생 초기부터 존재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탄생 이후 자연스럽게 시작된 수많은 예술적 실험 중 하나였다. 우연히 필름을 겹쳐 사진 위에 유령과도 같은 반투명 이미지를 만들어낸 최초의 사진작가가 느꼈을 짜릿한 공포와 흥분을 생각해보라. 분명 그의 눈앞엔 엄청난 시장이 보였으리라. 사진이 발명된 19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이 심령과학에 매료된 시기였다.

    그런 시기는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심령사진의 매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혹시 아는가, 그런 사진들 중 몇 개는 정말로 귀신사진일 수도. 물론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은 우리가 거기에 대한 정답을 모른다는 것이지만. 진짜 귀신사진보다 더 무서운 건 귀신사진일 수도 있는 사진들이다.

    태국의 반종 피산타나쿤과 팍품 웡품이 감독한 호러 영화 ‘셔터(shutter)’의 소재는 바로 이 심령사진이다. 길 가던 여자를 차로 치고 달아난 주인공 턴과 제인은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사진사인 턴이 찍는 사진마다 하얀 빛이나 끔찍한 외모의 귀신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턴이 찍는 사진들은 모두 유명한 심령사진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 턴이 알고 지내는 현상소 아저씨와 포토샵으로 귀신사진들을 조작해 삼류 잡지를 파는 편집자 아저씨가 나와 심령사진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들을 제공해준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영화만 봐도 심령사진에 대해 꽤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영화들은 대부분 자기가 선택한 소재의 무게에 눌려 주저앉는다. 가까운 예는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EVP 현상(전자음성현상으로, 텔레비전·라디오·컴퓨터 등의 주파수를 통해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추적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다룬 호러 영화 ‘화이트 노이즈’다. EVP 현상이라는 재미있는 소재에 지나치게 매료돼,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거의 담지 못했다. ‘셔터’ 역시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을 품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쪽이 허구인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셔터’는 심령사진이라는 소재만 골라놓고 방심하지 않는다. 영화는 ‘링’ 이후 아시아 이곳저곳에서 심심찮게 쏟아진 ‘긴 머리 여자 귀신’ 영화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에너지가 딸리는 것도 아니고 노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교통사고를 당한 귀신의 보복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생각 외로 입체적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죄악과 폭력을 품고 있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동원하는 장치들은 대부분 익숙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지만, 두 감독은 이 낡은 도구들을 예상외로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래전에 김이 빠졌다고 생각한 긴 머리 여자 귀신의 등장이다. 놀랍게도 이 귀신은 상당히 무섭다. ‘링’을 서툴게 모방하는 대신 고전적인 ‘전설의 고향’ 귀신의 공포를 그대로 도입한 게 성공의 비밀인 듯하다. ‘셔터’의 성공은 때로는 최신 유행을 좇는 것보다 우직하게 전통을 따르는 게 더 성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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