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휴즈’의 삶 부럽다 부러워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2-18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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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즈’의 삶 부럽다 부러워
    하워드 휴즈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쉬는 시간에 백일몽으로 꾸었을 법한 삶을 살았다. 석유 재벌의 아들인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엄청난 부자였다. 그의 장난감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들이었고, 그의 취미는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이었으며, 그의 연인들은 진 할로우·캐서린 햅번·에이바 가드너 같은 쟁쟁한 스타들이었다. 휴즈는 수많은 강박증으로 고통받는 괴짜였고 말년 역시 그렇게 아름다운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지나치게 화려하고 그럴싸해서 오히려 맥이 풀린다. 과연 여기서 쓸 만한 드라마와 메시지 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남들이 이 질문에 대해 자문하는 동안 마틴 스코시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연으로 내세워 ‘에비에이터’라는 제목의 휴즈 전기 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이 영화의 각본은 마이클 만 감독, 짐 캐리 주연의 기획으로 진행되다가 나중에 스코시즈에게 넘어간 것이다. 만의 버전이 나왔다면 스코시즈의 지금 버전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나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에비에이터’는 휴즈의 삶 중 관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화려한 전성기를 떼어내 스크린 위에 투사하고 있다. 줄거리는 위에 언급한 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디카프리오가 몸을 빌려준 하워드 휴즈는 영화 내내 비행기와 영화를 만들고, 할리우드 스타들과 데이트를 하며,하루에도 수십 차례나 특제 비누로 손을 씻는다. 스코시즈는 이미 그의 전매 특허가 되어버린 현란한 테크닉으로 그의 일대기를 휘황찬란하게 치장한다. ‘에비에이터’는 근사한 시청각적 성찬이며 흥미로운 연기 견본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휴즈 역을 썩 잘 소화해내고 케이트 블란쳇의 캐서린 햅번 성대 모사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도대체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은 뭔가. 아마 스코시즈는 그가 언제나 관심을 두었고 경배했던 전성기의 할리우드와 20세기라는 시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는 휴즈의 삶을 영화화하면서 그 근사한 삶을 대리 경험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우린 그냥 ‘그랬을지도 모른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에비에이터’는 화려하지만 얄팍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휴즈’의 삶 부럽다 부러워
    관객들이 집중해야 할 건 휴즈의 삶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나 깊이 있는 주제가 아니라 밖으로 드러난 그의 괴팍함과 호사스러운 업적, 연애담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자기 소임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기도 어려우니, 스코시즈에게 처음부터 그런 내적인 문제점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긴 그가 모델로 삼았을 게 뻔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도 기본적으로는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한 얄팍한 걸작이 아니던가.



    한 가지 궁금한 점. 이 영화의 원제는 ‘The Aviator’지만 우리나라 개봉 제목은 발음도 기억하기도 어려운 ‘에비에이터’다. 왜 ‘애비에이터’나 ‘에이비에이터’로 쓰지 않고 잘못된 표기를 고집하는 걸까? 궁금한 건 이런 제목들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니티 페어’, ‘아이 ‘엠’ 샘’…. 영화계에서만 표기법의 규칙이 날아가버린 걸까.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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