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5

2004.12.23

흥미진진한 마법, 반전 메시지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12-16 18: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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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진진한 마법, 반전 메시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가 오랜만에 만든 각색물이다. 영화의 원작은 1986년에 다이애나 윈 존스라는 작가가 내놓은 동명의 팬터지 소설이다. 그러나 그가 텔레비전 시절에 만들었던 충실한 서구 아동문학의 각색물을 기대하지는 마시길.

    윈 존스의 소설은 스크린으로 꼼꼼히 옮겨야 할 텍스트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식 드라마와 비주얼을 펼치기 위한 핑계에 가깝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은 수수께끼 마법사이고, 움직이는 성은 네 발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 동물 같은 그의 집이다. 어쩌다 평원의 마녀에게서 저주를 받아 90세 할머니로 변한 주인공 소피는 하울의 성에 청소부로 취직한다. 성에서 일하는 동안 소피는 서서히 수수께끼 마술사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윈 존스의 소설 무대인 잉거리는 전형적인 서구 팬터지물의 무대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무대를 그대로 살리는 대신 미야자키 특유의 가짜 서구 역사 속에 통합시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키키의 마녀수업’의 무대를 더 드라마틱하고 거창하게 펼쳐놓은 듯하다.

    영화 속의 잉거리는 대충 20세기 초를 연상시키는 중부 유럽의 국가지만, 한편에서는 날개 달린 거대한 배들이 하늘을 날고 다른 한편에서는 직업 마법사들이 돈을 받고 마법을 파는 곳이다. 윈 존스가 그린 동화적 세계는 미야자키의 손을 거치면서 스팀펑크(Steampunk,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전후를 주요 배경으로 한 일종의 대체 역사 팬터지를 말함) 버전 ‘해리 포터’로 개조된다. 그러는 동안 구식 내연기관과 대자연에 모순된 사랑을 느끼는 미야자키의 취향도 그대로 남는다.



    미야자키의 버전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영화에 추가된 강한 반전 메시지다. 비교적 온화한 동화 세계를 그린 윈 존스의 원작과 달리 미야자키 버전에서는 두 근대 국가의 전쟁을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그려낸다. 폭격기가 떨어뜨린 마법 괴물들과 폭탄들이 도시를 불타는 지옥으로 만드는 묘사는 이전의 미야자키 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소피와 하울의 이야기 역시 거대 집단의 대규모 전쟁에서 한 개인과 소규모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각색은 조금 산만하다. 윈 존스의 동화적 버전과 미야자키의 스팀펑크 버전을 불안하게 오가는 영화는 끝까지 어느 쪽에 남을지 정하지 못한 듯하다. 몇몇 줄거리의 진행 방향은 논리가 충분하지 못해 불분명하고 만족스러운 클라이맥스도 없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실제 길이보다 체감 길이가 더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여전히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장의 필체로 이 스팀펑크의 동화를 근사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야자키의 팬이라면 그가 만든 거대한 기계 성이 톱니바퀴와 체인을 덜컹거리며 질주하는 도입부를 보는 순간, 영화가 자신에게 무엇을 안겨줄지 알았을 것이다.



    Tips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바꾼 일본의 영화감독으로 TV 만화인 ‘미래소년 코난’을 통해 연출자로 데뷔했다.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 등이 대표작이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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