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9

2004.06.17

여대생과 사랑에 빠진 백마 탄 왕자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6-11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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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대생과 사랑에 빠진 백마 탄 왕자
    이 민주주의 세상에도 왕족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에 그들은 통치자였지만 지금은 할리우드 연예인에 더 가깝다. 그럴싸한 이미지와 상징들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스캔들로 오락을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통치행위와 정치에서 멀어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동화의 연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특히 왕 따위는 오래 전에 지워버린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래서인지 미국에는 놀랄 만큼 많은 왕당파들이 존재한다. 아마 윈저 왕가의 옹호자들은 영국보다 미국에 더 많을 것이다.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은 유럽 왕가에 대한 미국인들의 전형적인 환상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다. 덴마크의 바람둥이 왕자 에드바르트는 텔레비전에서 툭하면 가슴을 열어젖히는 미국 여자 대학생들을 본 뒤 위스콘신주의 모 대학에 가명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게 된 사람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뼈빠지게 공부하는 모범생 페이지다. 둘은 당연히 사랑에 빠지지만 에드바르트의 목에 걸려 있는 의무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여대생과 사랑에 빠진 백마 탄 왕자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한다. 우선 유럽의 왕자와 사랑에 빠진 평민 아가씨에 대한 고전적인 로맨스다. 하지만 21세기를 훌쩍 넘긴 이 시대에 여자 주인공이 그냥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웃긴다. 그래서인지 여자 주인공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 의사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남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왕자비로 만족할 것인가. 물론 영화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어정쩡한 중간 지점에서 끝이 난다.

    현대 유럽 왕족들에 대해 알고 싶은 관객들에게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은 좋은 정보 소스가 되어주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유럽 왕가에 대한 미국인들의 환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덴마크 역시(대부분 체코에서 찍었다) 라스 폰 트리어와 닐스 보어를 낳은 현대 국가 대신 옛 왕족들과 그만큼이나 낡은 건축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동화 속의 국가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덕택에 영화는 아무리 현대적으로 색칠을 하고 정치적으로 공정해지려고 해도 왕자 만나 출세한 평민 여자의 성공기에 머물고 만다.



    참, 말이 나왔으니 하나만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과연 미국이 덴마크에 노사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줄 만한 상황이긴 한가?

    [Tips | 라스 폰 트리어와 닐스 보어]

    디지털 시대의 ‘도그마’ 영화를 주창한 라스 폰 트리어(‘도그빌’ 감독)는 매우 혁신적인 새로운 현대 영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이고, 닐스 보어는 원자구조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덴마크 과학자다. 닐스 보어는 특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는 정치적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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