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2004.05.27

평범한 스릴러에 화려한 영상 덧칠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5-19 1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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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스릴러에 화려한 영상 덧칠
    곤 사토시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반동적이면서도 혁명적이다. 이 모순 되는 진술은 그의 영화들을 바라보는 방향과 관련이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도전적으로 느껴지는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도전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장르의 매력을 극한으로 밀고 갈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장르의 덫이 되어버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실사 영화와 같은 대접을 받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것인가?

    곤 사토시는 후자를 추구한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은 모두 기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상식을 뒤엎는 작품들이었다. 첫 작품 ‘퍼펙트 블루’는 사이코 스릴러고, 두 번째 작품 ‘천년여우’는 195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일본 여자배우의 일대기며, 세 번째 작품 ‘도쿄 갓파더즈’는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노숙인들의 멜로드라마다. 작품이 거듭될수록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정관념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퍼펙트 블루’는 곤 사토시가 쌓은독특한 경력의 시작이다. 원래 1991년에 쓰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실사 비디오 영화로 기획된 이 작품은 기획 중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된다. 결과적으로 잘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원래 계획대로 실사로 밀고 나갔다면 지금처럼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작품이 될 수 없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참’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인 미마가 그룹에서 탈퇴하고 연기자로서 새 삶을 살면서 시작된다. 미마는 간신히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살해당하고 촬영현장에서 이상한 사고들이 일어나며 인터넷에서는 수상쩍은 가짜 팬이 만든 미마의 홈페이지가 뜬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서서히 흐려져만 가고 미마는 그 모호한 경계선에 빠지고 만다.

    평범한 스릴러에 화려한 영상 덧칠
    과연 이런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능숙한 애니메이션의 기교와 스타일이 비교적 평범한 스릴러의 이야기에 결합되자 영화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실사라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쑥스러워 못할 법한 화려한 영상 표현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핑계를 대고 자연스럽게 터져나온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미마의 모습은 손으로 그려진 그림들로 구성된 셀 애니메이션의 장르를 통해 거의 완벽한 스타일을 얻는다. 실속 없는 낭비처럼 보였던 ‘퍼펙트 블루’의 애니메이션화(化)는 결국 모두가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Tips | 곤 사토시

    1963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남. 영 매거진에 단편만화를 발표하다 ‘해귀선’ 연재 후 단행본을 냈다. 영화 ‘월드 아파트먼트 호러’에 원안작가로 참여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재능을 나타냈다. 95년 극장용 애니메이션 ‘메모리즈’ 시리즈 중 한 편의 각본을 맡으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퍼펙트 블루’는 우리나라에서 부천영화제를 통해 97년 공개돼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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