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5

2004.05.20

서울 도심에 도인들 납시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5-14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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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에 도인들 납시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류승완의 ‘킬 빌’이다. 타란티노가 자신이 좋아하던 온갖 장르 영화들을 총집합한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류승완도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그가 팬으로서 흥분하며 좋아했던 장르들을 재구성하고 조합한다.

    물론 그 영화들 중에는 전설적인 만화영화 ‘마루치 아라치’도 포함돼 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스토리와 설정은 전형적인 무협지풍이다. 단지 영화는 이 모든 액션들을 현대 서울로 옮겨놓고 있다. 풋내기 순경 상환(류승범 분)은 장풍을 쓰는 편의점 직원 의진(윤소이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해 자칭 ‘칠선’이라는 다섯 도인들 밑에서 수련을 쌓는다. 그러는 동안 도인들에 의해 지하에 봉인됐던 일곱 번째 도인 흑운이 우연한 사건으로 풀려나오고, 상환과 의진은 다섯 도인들을 대신해서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을 탈취하려는 그를 막아야 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과 장르 세계, 과거와 현대가 뒤섞여 있는 설정이다. 고층건물 유리창을 닦는 청소부에서부터 기센 시장통 아줌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생활 도인’이라는 설정은 ‘소림축구’와 비슷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다. 고층빌딩 위를 뛰어다니며 범죄자들에게 장풍을 쏘아대는 도인들은 미국 슈퍼 히어로물과 또 다른 멋을 풍기며 긴 역사를 가진 서울이라는 현대 도시의 이면을 장난스럽게 파헤치기도 한다. 영화의 이런 허풍들은 마치 ‘품행제로’-역시 류승범이 주연인-의 주인공 중필의 허풍스러운 모험담을 직설적으로 해석해놓은 듯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엔 류승완의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날카로운 진검승부의 느낌은 없다. 이 영화는 타란티노가 ‘킬 빌’에서 보여주었던 무시무시한 영화광의 집착을 갖추고 있지도 못하고, ‘소림축구’처럼 황당한 설정을 극한으로 밀어붙이지도 못한다. 이야기는 너무나도 모범적으로 장르 규칙 속에 통합되어 있으며, 박물관에서 벌어지는 막판의 긴 결투신은 설정의 화려한 거짓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흥겨운 장르물이지만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안전하다.

    장르 영화들을 모두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평가하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감독의 전작)에 썼던 잣대를 그대로 다시 활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고려한다 해도 어느 정도 아쉬움은 남는다. 군무를 추기 위해 꼭 진검을 쓸 필요는 없지만, 썼다면 더 폼이 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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