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사랑의 힘이냐 인권 침해냐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4-02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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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힘이냐 인권 침해냐
    김호준 감독의 ‘어린 신부’는 일단 의도부터 의심스러운 영화다. 16살 소녀 보은(문근영 분)과 24살 청년 상민(김래원 분)이 역겨울 정도로 이기적이고 성급한 할아버지의 똥고집에 의해 억지로 결혼한다. 문명세계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중진국의 탈을 쓴 후진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부모가 허락(다시 말해 강요)한다면 여자의 경우 16살에 결혼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어린 신부’를 문제 삼으려는 이유가 미성년자와 성인의 러브 스토리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김래원과 임수정이 주연한 2003년작 ‘...ing’도 거의 비슷한 나이 차이인 두 사람의 연애담을 다루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좋은 연애영화였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은 세상 다른 모든 것들처럼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성적인 관계라 해도 그렇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어린 신부’는 그런 변명이 먹히지 않는다. 첫째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연애가 아니라 결혼이다. 그리고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결혼이란 야만적인 인권 침해다. 정상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영화라면 이 분명한 사실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어린 신부’는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한다. 물론 영화는 기본적인 규칙만큼은 지킨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둘 사이에 실제로 성관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논란을 막기 위한 규칙일 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정직한 나보코프의 소설들보다 훨씬 음탕하다. 이 영화에 사용되는 농담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문근영의 어리디 어려 보이는 외모와 성적 농담을 시치미를 떼고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어린 신부’가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장르 공식 속에서 설정이 강요한 위험한 문제들은 잊혀진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이 억지 해피엔딩을 통해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적응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최근 유엔 아동인권위원회가 여성들이 어린 나이에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 등의 강요로 결혼하는 문제점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을 권고했고 법무부에서도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으니, 아마 일이 상식적으로 풀린다면 여성의 최저 결혼연령은 만 16세에서 만 18세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신부’는 야만적인 민법의 지붕 밑에서 썩어가는 노인네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골적인 인권 침해가 당연한 것처럼 일어났던 구시대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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