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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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진 소년 영웅 ‘모험 속으로’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1-30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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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해진 소년 영웅 ‘모험 속으로’
    P. J.호건 감독의 ‘피터 팬’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영화가 은근히 에로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체적인 성적 묘사는 없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밀한 성적 유혹의 분위기를 풍긴다.

    요즘 같은 때 이런 인상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웬디와 피터의 키스신에 충격받았다. ‘피터 팬’에 성적 접근이 웬 말인가? 원작자인 제임스 M. 배리가 알았다면 무덤 속에서 돌아누울 일이다.

    하지만 호건의 ‘피터 팬’은 논리적이고 명확하며 정곡을 찌른다. ‘피터 팬’은 어떤 내용의 이야기인가?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같은 기존 버전에서는 영원히 어린아이인 주인공의 활달한 모험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호건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호건의 피터 팬은 ‘성숙’에 관한 이야기다.

    호건의 ‘피터 팬’은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위태로운 경계선에 선 두 사람의 이야기다. 피터 팬은 용감한 영웅인 척하지만 사실은 어른이 된다는 사실 자체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꼬마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게 겁나는 건 웬디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 캐릭터는 아직 자기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경계 너머의 세계에 매혹되어 있기도 하다. 네버랜드에서 웬디와 피터 팬이 겪는 모험은 이 두 사람의 여정이 나뉘는 갈림길이다. 영화에 은밀하게 깔려 있는 성적 암시는 스토리에 의해 정당화된다.

    ‘영원한 동심’을 내세워 인공적인 순진함을 과장한 스필버그의 ‘후크’와는 달리 호건의 ‘피터 팬’은 축축하고 유혹적이다. 동화책의 삽화처럼 화사한 색깔로 그려진 네버랜드의 세계 밑에는 물속에서 기어나와 끈적끈적한 물갈퀴 손을 내미는 인어들과 가끔씩 위험한 선을 건드리는 성적 유혹이 숨어 있다. 우리의 영웅이자 겁쟁이인 피터 팬 역시 파란 옷을 입은 호전적인 소년보다는 무성의 사티로스처럼 보인다.



    호건은 제임스 배리의 동화를 재구성하면서 동화와 성인 취향의 일반 픽션, 순진한 모험담과 성적 성숙에 대한 섬세한 성장기를 오가는 풍요로운 수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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