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6

2003.08.07

밤낮 바뀌는 ‘이중생활’ 상상력 게임

  • 김명준/ 영화평론가 mjkim@mediact.org

    입력2003-07-31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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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낮 바뀌는  ‘이중생활’  상상력 게임
    ”잠재력은 무한하다. 어렸을 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도 될 수 있고 디마지오도 될 수 있다. 하지만 21세가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엿 같은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호텔방에서 피범벅이 된 얼굴로 벌거벗고 서서 하루 종일 TV만 보는 척 배리스의 독백과 함께 시작되는 ‘컨페션’은 스파이물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의 광고카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영화의 뿌리가 된 것은 척 배리스의 자서전 ‘위험한 생각의 고백’(1982년 출간)이다. 이 책은 다른 모든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다.

    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고백은 이렇다. 1950년대 이래 ‘데이팅 게임’과 ‘신혼 게임’ 등 평범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가장 천박한 엔터테인먼트(TV 프로그램)를 만들어온 척이 사실은 CIA(미국 중앙정보국)에 고용된 암살자이며 게임쇼 촬영차 외국 출장을 다니면서 모두 33명의 ‘타깃’을 해치웠다(살인)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정치적 긴장감과 예술적 상상력을 동시에 자극하는, 도전해볼 만한,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소재다. 그런데 놀랍게도 블록버스터를 이끄는 배우이면서도 철저하게 냉소적인 반(反)영웅의 이미지를 유지해온 조지 클루니의 솜씨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지원사격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시 만만치 않다.



    이건 매우 정치적인 이야기다. 대중의 의식을 멍청하게 잠재우거나, 아니면 튀는 인간들은 아예 제거해버리는 체제의 생존전략이 척 배리스라는 개인을 통해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기본 줄기는 찰리 카우프만(‘존 말코비치 되기’의 작가)의 솜씨로 군더더기 없이 압축된다. 디테일은 섬세하다.

    밤낮 바뀌는  ‘이중생활’  상상력 게임
    게임쇼 연출자를 아버지로 둔 클루니는 즉흥적인 대사를 제재하기 위해 나온 FCC(연방통신위원회) 공무원이 관계자들을 협박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조금도 극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스타일은 매력적이다. 공상과 실제가 공간의 경계를 파괴하며 뒤섞이는 가운데 척의 이중생활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색채로 포장되고, 가끔 등장하는 연예계 인사들과의 실제 인터뷰 장면은 끊임없이 우화와 논픽션 사이를 오가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론 냉전과 대중문화, 애증과 성장기의 콤플렉스 등 너무 많은 것을 밀어넣은 탐식증은 이 전도유망한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소화불량 상태에 빠뜨리고 있기도 하다. 사운드트랙의 중심을 차지하는 그룹 ‘더 후’의 노래가사에 나오듯 ‘다신 속지 않겠다’는 세상에 대한 전면적인 냉소는 ‘고백(컨페션)’을 농담과 우화의 경계에서 방황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옥의 티가 있음에도 마침내 재능을 입증한 클루니의 ‘컨페션’은 성공적인 감독 데뷔작으로 기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타 출신 감독답지 않게 자신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고, 유치한 휴머니즘에 기대지 않으면서도(어떤 스타들이 그랬는지는 독자 스스로 판단해보기를), 이렇게 충분히 곱씹어볼 만한 얘깃거리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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