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2003.07.03

“전화 끊으면 넌 죽어!”

  • 김명준/ 영화평론가 mjkim@mediact.org

    입력2003-06-26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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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끊으면 넌 죽어!”
    “전화 끊으면 넌 죽어!”
    극장가에서 그리 주목받고 있진 못하지만, ‘폰부스’는 공중전화 박스라는 제한된 장소만을 배경으로 81분을 버텨내는 뚝심 있는 영화다. 조엘 슈마허의 연출과 래리 코엔의 시나리오, 다시 말하면 B급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블록버스터 감독의 만남이 빚어낸 이 소품은 강력 접착제와도 같다. 긴장의 근거는 뻔하지만 워낙 단순한 갈등과 위기를 뒤섞어서 밀어붙이는 통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공중전화 박스(폰부스)에서 막 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나오던 연예 에이전트인 스투는 무심코 폰부스로 걸려온 괴전화 한 통을 받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의 냉정한 목소리에 실려 나온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한 시간 동안 전화를 끊지 말고 자신의 지시사항에 따르라는 것. 하지만 전화를 끊거나 지시를 어기면 스투 혹은 그의 주변인물은 죽은 목숨이다. 이제 스투는 한 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강요받으며 수화기를 귀에 붙인 채 주변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원래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20년 전에 나온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나 해야 할 1980년대의 B급영화 아이디어가 이제야 빛을 발할 수 있게 된 것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덕택이다.

    모든 통화가 도청되고, 빌딩 숲 어딘가에는 테러리스트가 숨어 있으며, 테러리스트가 넘쳐난다는 이유로 공권력은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연행하고 전쟁까지 서슴지 않는 세상 말이다. 그 공포가 너무 실감나는 탓인지, ‘폰부스’의 미국 개봉일이 워싱턴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저격사건 탓에 4개월이나 미뤄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B급영화가 시대정신과 조우했다는 찬사를 받을 수도 있는 분위기가 잡히는 것인데, 애석하게도 ‘시대’는 모르겠지만 ‘정신’까지 건드렸다고 하기에는 ‘폰부스’는 힘에 부친다. 결말이 궁금하니 눈은 화면에 고정시켜야 하지만, 익명의 주체로부터 다가오는 공포의 근원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인권이고 약소국의 권리고 뭐고 돌아볼 겨를이 없는 막강한 애국주의 앞에서 지레 겁을 먹은 것일까 ?



    그래서 ‘폰부스’는 세상의 절박함에서 역사의 흔적을 모두 탈색한 공허한 전화박스가 되고 말았다. 단 열흘 동안에 LA에서 뉴욕의 거리 풍경을 뽑아내고 영화 속 시간과 상영시간을 일치시키며 긴장을 확대 재생산해내는 솜씨를 엿보고 싶다면 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가끔씩 할리우드에서 빚어내는 세련된 정치풍자를 맛보고 싶다면 주소를 잘못 찾은 셈이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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