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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그녀에게’

파격 … 충격 … 감동의 러브스토리

  • 전찬일/ 영화평론가 jci61@freechal.com

파격 … 충격 … 감동의 러브스토리

파격 … 충격 … 감동의 러브스토리
진부한 말이지만 세상엔 별의별 사랑이 존재한다. 그러니 허구의 세계이기 십상인 영화 속에서야 말해 뭣하랴. 요즘 방화 가운데도 인상적인 사랑영화가 넘쳐난다. 전과 3범의 남자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사이의 범상치 않은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를 비롯해 ‘로드 무비’ ‘죽어도 좋아’ ‘거짓말’ ‘정사’ 등이 그것. 외화 가운데서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걸작 멜로드라마 ‘영혼은 불안을 잠식한다’나 루이 말의 ‘데미지’, 스탠리 큐브릭의 ‘로리타’ 등이 당장 떠오르는 좋은 작품들이다. 모두 현실세계에서 흔히 보기 힘든, 극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사랑 얘기다.

여기 또 한 편의 영화가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스페인이 낳은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전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에 이어 지난해 발표한 또 한 편의 걸작 멜로드라마 ‘그녀에게’가 그것이다. 타임지가 ‘2002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한 데 이어 올해 75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은 화제작이다. 영화는 한마디로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 감동의 러브스토리를 선사한다.

간호사인 한 사내가 있다. 이름은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 분). 그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미모의 발레리나 알리샤(레오노르 와트링 분)를 무려 4년째 간호하고 있다. 머리를 빗겨주고 몸을 씻겨줄 뿐 아니라, 뜻밖에도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베니그노는 알리샤를 임신시키고, 그 때문에 강간죄로 투옥되기까지 한다. 가히 전에 보지 못했던 지독한, 너무나도 지독한 사랑이다. 혹자는 병적ㆍ변태적이며 여성혐오적이라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파격 … 충격 … 감동의 러브스토리
반면 저널리스트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분)의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 분)를 향한 사랑은 퍽이나 다른 모습이다. 집착이나 소유가 아닌 공유와 체념으로서의 사랑이랄까. 투우 경기중 부상해 알리샤처럼 뇌사상태에 빠진 인기 여성 투우사 리디아를 여전히 사랑하긴 하나 그는 베니그노와 달리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서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내에게는 결정적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외로움. ‘그녀에게’는 이렇듯 상이한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뼈에 사무칠 만큼의 고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소통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희망과 절망, 신념, 기적 등 삶의 조건을 되돌아보게 하는 ‘비범한 통속물’이다.



영화에는 잊을 수 없는 이미지와 사운드들이 넘실댄다. 당장 두 남자 주인공을 소개하는 도입부부터가 그렇다. 전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공연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감독은 이번엔 세계 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 ‘카페 뮐러’로 우리의 눈길과 귀를 잡아맨다.

마지막 부분의 ‘마주르카 포고’ 공연 또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바우쉬가 얇은 슬립을 입고 눈을 감은 채 탁자와 의자에 둘러싸여 양팔을 뻗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 네 주인공들이 머물고 있는 연옥, 즉 이 세상의 이미지를 함축적이고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파격 … 충격 … 감동의 러브스토리
로커 출신 감독의 작품답게 음악은 비단 그 두 시퀀스에서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영화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다. 특히 현대 브라질 음악의 대표적 인물로 통하는 카에타노 벨로소가 직접 연주하며 들려주는 ‘쿠쿠루 쿠쿠 팔로마’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이미 왕자웨이의 ‘해피 투게더’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인 바 있는 그 곡은 색다른 감흥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한편 네 주연 배우들은 정중동(靜中動)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물 내면의 강렬한 욕망을 그저 표정과 눈빛만으로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 자체가 여느 특수효과물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의 허를 찌르는, 극히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힘이다. 그 플롯에서 풍겨나오는 리듬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주제면에서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다소 뒤떨어지지만, 그보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것은 탄탄한 플롯의 힘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그저 별다른 생각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여느 감동적 수작들을 능가하는 감흥을 맛보게 한다.





주간동아 381호 (p92~93)

전찬일/ 영화평론가 jci61@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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