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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투게더’

감동의 바이올린 선율 … 중국을 꼬집다

  •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감동의 바이올린 선율 … 중국을 꼬집다

감동의 바이올린 선율 … 중국을 꼬집다
영화 마니아들은 행복하다. 격동의 198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중국 제5세대 감독들의 최근 걸작들을 잇따라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이모 감독의 장대한 스케일의 무협영화 ‘영웅’에 압도되었던 관객들은 이제 스케일은 그에 비할 바 못 되나 따뜻한 인간의 정이 물씬 풍기는 천 카이거(陳凱歌)의 음악영화 ‘투게더’를 음미할 수 있게 됐다. 음악영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런 장르의 영화에서 늘 보았던 것처럼 온갖 시련을 딛고 마침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한 음악천재의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다.

요컨대 겉보기에만 음악영화처럼 보이는 ‘투게더’는 사실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으면서 점차 변모해가는 중국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이다. 또한 감독 자신의 인생역정이 어느 정도 투영된 자기반성적 영화이기도 하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농촌에 샤오천(탕 윤)이라는 이름의 바이올린을 아주 잘 켜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마을 아줌마가 해산의 고통을 겪을 때 샤오천의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이 순산의 원동력이 될 정도다. 샤오천의 가난한 요리사 아버지 리우 청(리우 페이치)은 아들의 천부적 재능을 살려주기 위해 더 나은 환경인 베이징으로 옮기게 된다.

이부자리 두 채 달랑 들고 베이징에 도착한 아버지와 아들. 샤오천은 대회에 참가하여 뛰어난 실력을 보였음에도 상위권에서 밀려난다. 연줄과 돈이 없는 탓이었다. 아버지 리우 청은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어줄 스승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그러다 마침내 자식의 재능을 알아보는 스승 지앙 선생(왕 지웬)을 만났지만, 그는 열정만 있을 뿐 현실감각이 없다. 결국 또 다른 스승인 유교수(천 카이거 감독이 역을 맡았다)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는 냉정한 승부사였다. 샤오천은 극과 극을 달리는 두 교수 밑에서 공부한 끝에 자신의 천재성을 만천하에 과시할 좋은 기회를 잡게 된다.

감동의 바이올린 선율 … 중국을 꼬집다
그리하여 그는 성공을 거두었을까? 사실 이런 성공 구도로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또 다른 성공 신화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터다. 이런 기본 골격의 틈새 속에 천 카이거 감독이 절묘하게 배치한 알짜배기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투게더’는 음악적 즐거움을 넘어선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런 깊은 맛을 지면을 통해 대리체험케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영화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텍스트 외적인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한 정보는 알아두는 것이 좋다. 정황(컨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때로는 텍스트에 대한 재미를 배가시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선 흥미로운 점은 천 카이거가 직접 배우로 출연한다는 것. 물론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출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가 맡은 유교수 역이다. 유교수는 이른바 스타 제조기다. 가능성만 보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존논리를 가장 잘 체득하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여기서 유교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음악에만 몰두하는 지앙 교수와 대립되고 있다. 천감독은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한창일 때 홍위병의 일원이었다. 심지어 감독이었던 아버지 천화이아이(陳懷白豈)를 고발할 정도로 운동에 헌신적이었다. 한때의 젊은 혈기로만 돌리기에는 현실적인 힘이 워낙 강해 그 앞에 굴복했다고 할까.

감동의 바이올린 선율 … 중국을 꼬집다
천감독은 자신이 직접 타협적인 인물을 맡음으로써 일종의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고 있는 셈이다. 사회주의 방식으로 한다면, 자아비판이랄까. 이런 해석은 극중 아버지와 아들, 즉 리우 청과 샤오천의 관계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천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버지가 된 지금,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심정을 잘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자신의 아버지와도 화해를 했노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전통적 가부장제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만이 아버지를 설명할 수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아니지 않은가.

또 하나는 이 영화에서 천감독의 실제 아내가 맡고 있는 릴리(천 훙)라는 캐릭터다. 그녀는 콜걸이다. 천감독은 영화예술을 일종의 ‘성스러운 창녀’와도 같다고 말한다. 보기에 따라서 성스러울 수도 있고, 속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영화 속의 릴리가 바로 그런 존재다. 뭇 남자들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창녀지만, 순박한 시골소년 샤오천에게는 그야말로 천사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영화 속 캐릭터인 창녀는 이처럼 이중적이다.

끝으로 한 가지는 천 카이거 감독의 지향점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최고 성공작인 ‘패왕별희’에서 구시대 악인 홍위병을 성토하며 체제비판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이는 장이모 감독이 ‘국두’ 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반봉건적인 정치적 태도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 알다시피 장감독은 ‘영웅’을 통해 중화 패권주의로 회귀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는 달리 천감독은 체제 내 비판자(insider)로 남아 있다. ‘투게더’가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주간동아 376호 (p92~93)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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