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2002.07.18

오락 이상의 성과, 그러나…

  • < 곽영진/ 영화평론가 > 7478383@hananet.net

    입력2004-10-15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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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 이상의 성과, 그러나…
    월드컵 폐막 직후인 7월3일, 전례없는 주중(수요일) 심야 대개봉으로 국내 개막을 선포한 ‘스타워즈 에피소드2.’ 직배사인 ㈜20세기폭스코리아는 이 작품을 ‘슈퍼 블록버스터’ 프로젝트의 하나로 삼아 올 여름 대목의 초반 기선제압에 나섰다.

    전작 ‘에피소드1’(1999)이 전국 140만 관객 동원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100만명 돌파는 무난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에피소드2’의 흥행실적이 미국에서 16위, 세계 전역에서 20위권으로 전작 기록(역대 박스오피스 미국 4위, 세계 전역 3위)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이마저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스타워즈’ 3부작의 개봉(1977/80/83)과 디지털 업그레이드 버전의 재개봉(1997) 당시 미국과는 판이한 ‘불과 몇 십만’의 왜소한 성적을 기록했다. 한국에선 ‘터미네이터’나 ‘쥬라기공원’처럼 상대적으로 현실성과 폭력성이 강한 SF액션물이 인기를 얻고, ‘스타워즈’ 연작물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여타 나라들도 마찬가지.

    ‘현실성’과 폭력성 외 흥행에 영향을 끼치는 더 큰 요인도 있다. 디지털·게임세대의 비중이 부쩍 커진 근래에 ‘루카스 왕국’의 영업환경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동·서양간 또는 한미간 문화적 정서와 기호의 차이, 신화적이고 역사·문학적인 텍스트와 그 ‘체험’의 차이들은 여전히 가로놓여 있다.

    오락 이상의 성과, 그러나…
    이 시리즈물에 대한 사전 체험(관람 및 인지)의 차이 역시 무관심과 환호의 경계를 가른다. 전작들의 시대 배경·스토리라인·인물 등과 작품 분위기인 ‘아우라’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체험이 없는 이 작품의 ‘문외한’들은 신작 개봉에 동참을 꺼리게 된다.



    예컨대 이번 ‘에피소드2’에서 요다(E.T.와 비슷하게 생긴 874세의 제다이 기사단의 대사부)가 드디어 처음으로 광선검을 휘두르며 결투를 벌일 때 미국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우리는 그처럼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만큼 관객들의 ‘입선전’을 통한 파급도 작다.

    그럼에도 우주 팬터지, 우주 오페라, SF 모험동화라고도 불리는 ‘스타워즈’는 관객에게 우선 엄청난 규모의 스펙터클(구경거리)과 상상력을 제공한다. 또 텍스트도 느슨하고 지적·정서적 연령도 낮은(보편적인?) 데다 이번 작품에선 로맨스를 강조했다. 기이하게도 과거보다 미래, 원인보다 결과의 이야기로 시작한―그래서 초기 3편의 제목이 ‘에피소드 4/5/6’으로 바뀌어야만 했던―이 대하 서사물에 대해 약간의 관심만 둔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오락 이상의 성과, 그러나…
    예컨대 ‘에피소드1’을 보지 않았으며 초기 세 편 중 한두 편을 십수년 전에 본 적 있는 어느 40대 관객은 ‘에피소드2’를 본 뒤 “매우 재미있고 경이로웠으며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다만 ‘스타워즈’는 지구의 역사와 종족 등 그 어떤 것과도 전혀 관련이 없으며 자의적이고도 비과학적으로(원작자이자 감독·제작자인 조지 루카스 마음대로) 우주와 은하계의 ‘시간’을 다룬다는 점만 기억하자.

    ‘에피소드’ 1·2편은 실로 장대한 은하계 역사의 아주 작은 토막을 뚝 잘라, 약 10년간에 펼쳐진 은하영웅 전설을 담고 있다. 러닝타임 2시간20분의 2편은 10년 뒤, 5000년 역사의 ‘은하 공화국’에 도래한 안팎의 각종 위기를 다루면서 수련기사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성격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젊은이가 훗날 ‘에피소드 4/5/6’의 주인공인 전사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이며 3편에서 제다이들의 떼죽음과 공화국의 붕괴를 가져올 어두운 포스의 인물 다스 베이더다. 따라서 팬들의 관심은 온통 그 변절의 배경과 동기에 쏠린다. 이번 2편의 원제목(Star Wars episode 2: attack of the Clones)처럼 유전자 복제인간들로 양성되고 구성된 클론군대의 습격은 주변 이야기에 불과하다.

    장르의 다중적인 접목·혼성이라고 하는 영화 형식상의 진화, 그리고 특수 촬영·음향 등 기술상의 변혁을 가져온 ‘스타워즈’와 그 시리즈는 오락 그 이상이다. 영화예술에 대한 형식·기술적 기여도, 거기에다 세계(특히 미국) 영화흥행사를 요동시키며 산업적 영향력을 과시해 온 측면도 오락 이상이다.

    그러나 ‘스타워즈’ 현상이 확실히 ‘오락 이상’의 성과이기는 하지만, 영화미학적이고 문화인류학적인 ‘위대한’ 성과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내러티브)의 창의성과 완성도 면에서나 기술과 기법의 혁신성에서, 그리고 철학·메시지 등 정신적 측면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는 ‘게임의 규칙’(1939), ‘시민케인’(1942),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등 영화사 107년의 백미들에 근접하지는 못한다.

    국내 영화들의 선전에 힘입어 요즘 전국 관객 200만명에 미치지 못하면 블록버스터도 아니라는 데, ‘스타워즈’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호기심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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