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9

2016.12.28

책 읽기 만보

다시 시작하는 시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12-23 18: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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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멈춤
    박승오·홍승완 지음/ 열린책들/ 552쪽/ 2만2000원


    다시 시작하려면 일단 멈춰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질주하는 인생의 시동을 끄고, 집중적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삶을 실험하는 시기를 ‘전환기(turning period)’라 부르자. 전환기는 퇴비를 만드는 시간이다. 낙엽과 똥, 오줌 등을 손수 모아 오래 발효시켜 두엄을 만드는 것이다. 효율이 낮고 속도도 느리지만 부작용이 없고 효과가 확실하며 땅도 살린다. 전환기는 경쟁, 효율, 속도, 성취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멈춤의 시간’이다. 이때 챙겨야 할 도구가 있다. 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 이 아홉 가지 도구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스스로 인생의 전환기를 거친 두 저자가 인생을 도약시키는 ‘멈춤’의 힘에 대해 썼다. 먼저 두 저자의 전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의 ‘부록 3’부터 보자. 박승오 씨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4학년 때 심각한 녹내장으로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돼 평생 뿌옇고 좁은 시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맞았다. 이틀에 한 번꼴이던 밤샘 공부와 안약 남용이 원인이었다. 녹내장 확진을 받고 3년간 방황하다(사건), 구본형의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고 ‘가장 나다운 것’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각성). 그리고 구본형 씨의 지도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삶의 방향성을 발견해(모색) 교육 전문가이자 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거듭남).

    홍승완 씨는 2009년 1년 동안 세 권의 책을 쓰다 번아웃(burn out) 상태에 빠져 직장을 그만뒀다(사건). 회사를 그만두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지만 다시 무기력에 빠졌고 이에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각성). 5년간 책 1000권을 읽고 500편의 글을 썼으며 자신만의 공간 ‘회심재’를 마련했다(모색).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한 뒤 그간의 공부를 총정리한 두 권의 책을 썼다(거듭남). ‘위대한 멈춤’은 그중 하나다. 두 저자는 전환 도구로 독서, 글쓰기, 스승을 공통으로 꼽았다.

    이 책은 삶의 전환 과정을 사건, 각성, 모색, 거듭남으로 정리한 ‘전환의 창’ 모델을 제시한다. 이 모델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작가 카렌 암스트롱,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정신의학자 칼 융, 화가 폴 고갱, 작가 헤르만 헤세,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의 삶을 단계별로 분석한다. 한국인으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외친 구본형, 신화 전문가이자 작가 이윤기가 등장한다. 박승오 씨와 홍승완 씨는 각 인물이 삶의 단계에서 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라는 아홉 가지 전환 도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이 책의 2부 ‘탐험, 삶을 바꾸는 아홉 갈래의 길’에 자세히 소개했다.



    두 저자가 많은 인물의 삶을 탐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근본적인 변화는 삶의 목소리, 곧 자기 운명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수용’에서 출발한다는 것.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롤리타는 없다 1, 2
    이진숙 지음/ 민음사/ 1권 272쪽, 2권 292쪽/ 각 권 1만6000원


    저자가 추구하는 ‘공감의 인문학’이란 호메로스에서 김소월까지, 고흐에서 김환기까지 고전이 된 문학과 그림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를 찾는 작업이다. 랭보와 벨라스케스를 통해 “나만의 마법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것”을, 톨스토이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내적인 태도”를, 루소와 체호프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랑의 기술”을 깨닫는다.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지현 지음/ 소나무/ 400쪽/ 1만8000원


    20세기 초 견고한 민족주의 담론에 균열을 일으킨 책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출간한 후 ‘일상적 파시즘’ ‘합의독재’ ‘대중독재’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등을 잇달아 펴내며 국내 역사학계에 첨예한 논쟁을 일으켜온 저자가 자신의 학문 여정을 기록했다. 즉 ‘임지현이 만든 역사’에 대한 성찰과 ‘임지현을 만든 역사’에 대한 분석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탄생한 ‘에고 히스토리’를 들려준다.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한정주 지음/ 다산초당/ 548쪽/ 2만5000원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였던 18세기 북학파 또는 백탑파로 불린 지식인 그룹에서 활동한 이덕무는 ‘간서치’(책에 미친 바보) 면모로 널리 알려졌지만 시와 산문, 문예비평, 동서 문물에 대한 기록, 여행기 등 참신하고 통찰력 가득한 글을 남긴 조선 최고 문장가였다. 고전연구가인 저자가 ‘청장관전서’(이덕무 저술총서)를 텍스트 삼아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통해 18세기 조선 지성사를 정리했다.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
    고연희·이경구·이숙인·홍양희·김수진 지음/ 다산기획/ 228쪽/ 1만8000원

    마흔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신사임당은 80여 점의 그림을 남긴 화가이자 부모에겐 효녀, 7남매를 훌륭히 키운 어머니, 집안 어른으로서 현모양처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초인(超人)의 형상으로 그려진 신사임당의 모습은 진짜일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각각 한국미술사, 조선시대 사상사, 동양철학, 식민지 가족사, 신여성담론 등을 연구해온 5명의 저자가 자연인 신사임당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시선의 저편
    김병익 지음/ 문학과지성사/ 198쪽/ 1만3000원


    2013~2016년이면 저자 나이 76~79세. 그사이 ‘한겨레’에 기고한 글 25편을 책으로 엮었다. 서평 칼럼집이라지만 소설, 과학교양서, 경제학 이론서, 자서전, 평전 등을 넘나들며 책을 ‘사유의 도구’로 삼아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가 묻어난다. “자유롭지만 방만하며 넓지만 얕고 나직하지만 수선스러운 글꼴”이라고 한 고백에서 은퇴자의 자유와 나이 듦의 평온이 느껴진다.





    손바닥만한 희망이라도
    박승준 지음/ 오르골/ 248쪽/ 1만4000원


    인생의 3분의 1을 라디오와 TV PD로 살았고 지금은 ‘시간을 파는 사람’, 카페 카덴차 주인으로 살아가는 저자가 ‘인물 검색에 안 나오는 카페아저씨의 산문’이란 부제로 쓴 에세이집. 그가 카페를 시작하며 ‘목 넘길 때 너무 순하지 않고, 강한 맛과 약한 맛으로 나눌 때 강한 맛의 느낌이 드는 커피, 아메리카노로 아주 좋고, 라테로 만들어도 괜찮을 커피’를 추구했듯이 그의 글도 꼭 그렇다.


     


    오만과 무능 : 굿바이, 朴의 나
    전여옥 지음/ 독서광/ 337쪽/ 1만5800원


    “사람들은 몰랐다. 선거의 여왕이면 대통령직도 잘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보기 좋게 속았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전여옥 전 의원이 쓴 정VV치 평론집. ‘재앙-대한민국은 박근혜의 사유물이었다’ ‘무능-최순실 기획사의 아이돌’ ‘농단-최태민이 친 주술의 덫’ ‘오만-국민을 배신했다’ ‘참담-응답하라, 박근혜’ ‘결별-이제 그 전말을 말한다’ ‘희망-NO!는 기적을 만든다’ 등 7개 단어로 ‘박근혜 시대’와 ‘박정희 패러다임’의 한계를 짚었다.




    나는 형제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
    히라야마 료·후루카와 마사코 지음/ 오선이 옮김/ 어른의시간/ 224쪽/ 1만4000원


    무직인 남동생, 미혼인 누나는 누가 돌볼 것인가. 부모 간병이라는 산을 넘으면 기다리고 있는 형제 부양의 문제.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의 저자인 일본 사회학자가 ‘형제격차’에 주목했다. 가족 문제는 가족 안에서 해결하라고 강요하는 가족주의의 한계, 장남에게 지우는 가족 부양의 짐, 부모의 자식 편애 등으로 생긴 형제격차와 가족 붕괴 현상을 파헤쳤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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