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1

2012.04.02

레임덕은 없다

4회 세우리당

  • 입력2012-04-02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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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임덕은 없다
    청와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오전, 여의도 국회의사당 별관 소회의실 안이다. 외부인사 출입을 금지시킨 회의실 안에는 10여 명의 의원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친박계 중진들이다. 방 안 분위기는 격양되어 있다가 슬슬 가라앉는 중이다. 상석에 앉은 박근혜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조금 상기되었다. 어제 이명박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말해준 것이다. 모두 한두 번씩 격한 표현으로 이명박을 성토한 후라 지금은 머릿속의 계산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때 홍사덕이 말했다.

    “이명박이 이재오 코치를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건 이명박 스타일이 아닙니다.”

    “나갑시다.”

    서청원이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라고 했는데 안 나가면 더 무시를 받습니다. 나가십시다.”



    “아니, 잠깐만.”

    이맛살을 찌푸린 김무성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럼 그쪽 페이스에 말려듭니다. 이명박이 그걸 예상 못 하고 있겠습니까?”

    “글쎄,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하고 서청원이 역정을 내었을 때 진영도 한마디했다.

    “지금 상대방 의표를 찌르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닙니다, 여러분.”

    시선이 모였고 진영이 말을 잇는다.

    “정도로 나가면 됩니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할 테고 그것이 대의올시다. 이명박 눈치 볼 것 없습니다.”

    “그 대의가 무엇이오?”

    홍사덕이 바로 이어서 묻는 것이 진영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려는 의도 같다. 그러자 진영이 말했다.

    “이명박과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로 함께 행동할 수 없다면 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같은 당에 있으면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다면 국정은 표류할 것이고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국어책 읽는 것 같아서 지루하다. 모두 알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도 입을 꾹 다문 채 듣기만 한다.

    # “무엇이?”

    마포을 초선의원 강용석이 굵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오후 4시경, 의원회관 안 의원실에서 강용석은 보좌관 이필수에게 되묻는다.

    “무슨 당이라구?”

    “세우리당이랍니다.”

    “그러니까 이 대통령이 그 세우리당을 창당한다고?”

    “아닙니다. 당명을 바꾸는 것이라는데요.”

    “세우리?”

    “예.”

    “좆을 세우는 거여, 머여. 당명이.”

    투덜거린 강용석이 눈썹을 찌푸렸다. 오전부터 친박계 중진들의 회동이 이어졌고 어제 청와대 면담의 정보가 속속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빠르다. 광우병 난동이 이어지자 이명박의 우유부단한 처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한나라당 내에서도 팽배해진 것이다. 그것이 갑자기 며칠 사이에 바뀌었다. 그러고는 박근혜를 불러 설득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더니만 다음 날 좆을 세우다니. 보좌관 이필수가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를 했으니까 곧 당에서도 연락이 올 겁니다. 아마 당 중진들끼리는 다 상의했겠지요.”

    “시발, 요즘 정신 못 차리겠구먼.”

    강용석이 눈을 치켜떴다가 곧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명박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여당이 제구실을 못 한다. 그래서 분당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지 않은가.

    # “이거 또 뒤통수 맞은 기가?”

    버럭 소리친 김무성이 보좌관을 노려보았을 때 옆쪽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비서관이 전화를 받았지만 김무성의 굵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명을 바꿔? 이건 분당 해나가겠다는 것 아냐?”

    그때 비서관이 굳은 얼굴로 김무성을 보았다. 수화구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다.

    “의원님, 청와대 비서실장입니다.”

    눈을 치켜뜬 김무성에게 비서관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 통화하고 싶으시답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대통령 전화는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김무성이 손을 내밀어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예, 김무성입니다.”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응답했더니 류우익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 의원님, 저 류우익입니다. 이거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기, 대통령님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곧 이명박의 조금 갈라진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렸다.

    “김 의원, 납니다.”

    “아아, 예. 대통령님.”

    방 안은 조용하다. 보좌관 둘, 비서관 하나, 여직원 둘이 이쪽저쪽에 서 있거나 앉았다. 오늘밤 안으로 이 소문은 전국으로 아니,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명박이 김무성에게 전화를 해온 것이다. 그때 이명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 의원, 도와주시오. 내가 박근혜 의원하고 갈라서자는 뜻이 아닙니다. 용서해달라고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국정 현안이 급한 상태니만치 일단 뭉쳐서 뚫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럴 수가 없다면 차라리 떨어져서 확실하게 나가자고 했지요.”

    “대통령님, 저는….”

    “시간 소모할 수가 없어서 한나라당 내에서 세우리당을 만든 겁니다. 예,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자는 의미지요. 내가 직접 당명을 지었습니다.”

    18분 후 차 안에서 서청원이 이명박과 통화를 하고 있다. 서청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듣기만 한다.

    “서 의원,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뭉쳐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 한번 결실을 거두고 나서 다음으로 이어가십시다.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선거법 때문에 곧 재판을 받아야 하는 서청원은 복잡했던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대통령이 간절하게 부탁을 하고 있다.

    # 홍사덕은 유정복과 여의도 일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이명박의 전화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쪽도 말을 좀 했다. 이명박의 부탁을 들은 홍사덕이 조리 있게 말한다.

    “대통령님, 세우리당 창당을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힘써 보겠지만 이쪽에 여유를 좀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이명박의 부탁을 다시 받고 점잖게 응대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이 양반, 정말 달라졌네.”

    홍사덕이 상기된 얼굴로 유정복을 보았다. 유정복은 얼굴에 웃음만 띨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똑같은 자식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자신이 서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런데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에 유정복도 이명박의 전화를 받는다. 홍사덕의 시선을 받은 유정복이 어깨를 폈지만 콧구멍이 조금 벌름거렸을 뿐 차분한 표정이다. 이명박의 부탁을 들은 유정복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대통령님. 수고하십니다.”

    # 다음 날 아침 7시경, 한강 고수부지를 조깅하던 유승민이 앞쪽 트랙 옆의 벤치에 앉아 있던 사내가 엉거주춤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사내는 붉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는데 흰 운동화를 신었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다. ‘청원하려고 기다리는 선거구민인가’ 하면서 다가가던 유승민은 기절초풍했다. 이명박이었던 것이다. 얼굴 윤곽이 분명하게 드러났을 때 이명박이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은 머리 위가 납작하게 죽었다. 머리를 다듬지 못한 것 같다. 유승민이 다가섰을 때 이명박이 그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구, 잘 뛰시네요.”

    # “내가 시발, 대통령이라구.”

    그날 저녁, 청와대에서 김 여사와 둘이 저녁을 먹던 이명박이 불쑥 말했다. 놀란 김 여사가 먼저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고 나서 이명박의 얼굴을 보았더니 눈을 치켜떴지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허세 부릴 때나 거짓말할 때의 제스처다. 40년을 함께 살면 콧구멍만 벌렁거려도 다 안다. 김 여사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그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내가 끝까지 다 올라갔단 말야.”

    “누가 뭐래요?”

    했지만 이명박의 기세는 죽지 않는다.

    “무릎 꿇고 엎드려서도 사정할 거야.”

    김 여사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 신문은 물론이고 방송에서도 대통령의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접촉을 대서특필했다. ‘구애’ ‘요청’은 점잖은 표현이고 ‘유인’ ‘협박’ ‘구걸’ ‘독재로의 장정’ 등 물어뜯는 언론도 많다. 한 모금 국을 삼킨 이명박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내가 다 버리고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는 놈은 역적이고 매국노지.”

    놀란 김 여사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난 5년 후에 죽을 각오를 하기로 했어. 그랬더니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김 여사는 그것이 무슨 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과는 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짊어진 짐을 다 내려놓은 것 같다.

    # 이재오가 머리를 들고 박근혜를 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크게 뜨고 있어서 무서운 형상이 되어 있다. 여의도의 일식당 ‘동경’ 밀실에는 넷이 모여 앉았다. 박근혜와 유승민, 그리고 이재오와 류우익이다. 오후 7시 반, 식탁 위에는 깨작거리다 만 회와 음식 접시가 놓여 있다. 방 안에는 잠깐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가 이재오의 목소리로 깨졌다.

    “저기, 대통령께서는 전(前) 대통령 노무현, 그리고 김대중, 전두환, 김영삼 네 분을 세우리당 고문으로 영입하시기로 했습니다.”

    놀란 박근혜가 숨을 삼켰고 유승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재오의 저녁 초대를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마음을 굳히지 않았던 박근혜다. 이명박의 대의는 이해했지만 요즘 며칠간의 압력은 과시, 과장의 성격이 짙었다. 진정성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졌고 여론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때 이재오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 승낙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선 비밀리에 네 분 전임 대통령을 직접 찾아뵈었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박근혜의 시선을 받은 이재오가 희미하게 웃었다.

    “각각 다른 점이 있었지만 한때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신 지도자들이시니 장점은 취하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

    “지난번 광우병 사태를 도와주신 노 전 대통령 경우와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기뻐하셨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쩔 작정이신데요?”

    마침내 박근혜가 그렇게 물었다. 처음으로 구체 사항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자 이재오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박 의원께서 세우리당 창립위원장 겸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주시지요.”

    레임덕은 없다
    # “시발, 박근혜가 안 넘어갈걸?”

    인테리어업자 오종택이 말했지만 서상국은 머리를 내저었다. 둘이 오늘 밤에는 포장마차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오늘은 술을 오종택이 산다. 어제 서상국이 거래하는 총판 한 놈이 부도를 내고 도망갔기 때문에 서상국은 1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서상국이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어. 대세를 따라야지.”

    오종택의 시선을 받은 서상국이 말을 잇는다.

    “이명박은 주변에서부터 공략을 했고 박근혜는 뻔히 알면서도 놔둔 거다. 그리고 대세를 따라 못 이기는 척 세우리당에 합류하는 것이지.”

    그러고는 덧붙였다.

    “이제는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해야 돼. 그것이 순리고 대세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사과도 받았겠다, 세우리로 간다.”

    “뭘로? 대표로?”

    “아마 당을 맡게 되겠지.”

    “그렇군. 새롭게 태어난 세우리당에서 박근혜가 새로 시작한단 말이지?”

    그러고는 오종택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발, 세우리당에서 못 세운 놈들은 모두 근혜한테 짤리겠군.”

    그 시간에 이명박은 봉하마을의 노무현과 통화를 한다. 오늘 통화는 노무현이 청와대로 연락을 한 것이다.

    “예, 말씀하시지요.”

    이명박이 말하자 노무현은 잠깐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인연이란 게 가위로 줄 자르듯이 그냥 뚝 자를 수가 없는 것이드만요.”

    “그렇죠.”

    맞장구를 친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그게 인간 아닙니까? 기계처럼 그럴 수 없지요. 흘리고, 때 묻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겁니다.”

    “지금 담배 피우고 있습니다.”

    불쑥 노무현이 말했으므로 이명박이 짧게 웃었다.

    “베란다에 혼자 나와 계시는구먼요.”

    “참 조용합니다, 이곳이.”

    “언제 룸살롱이나 한번 모시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때가 언제가 될까요?”

    그러고는 둘이 동시에 낮게 웃었다.

    “그런데, 참.”

    먼저 입을 연 것은 노무현이다.

    “세우리당에 가겠다는 사람이 몇 명 있어서요.”

    “아, 예. 얼마든지.”

    “박근혜씨한테 보낼까요?”

    “제가 이야기해놓겠습니다.”

    “실업자들이 되어서요.”

    웃음 띤 목소리로 노무현이 말을 잇는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하실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자 노무현이 다시 짧게 웃는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엮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직 시작이지요.”

    “앗, 뜨거.”

    노무현이 짧게 외쳤으므로 이명박은 숨을 죽였다. 그때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낸 노무현이 말했다.

    “담배를 끄다가 불똥이 떨어져서….”

    “사모님한테 들키실라구…”

    그렇게 말한 이명박의 가슴이 쩌르르 울렸다. 그쪽은 조용하다고 했다. 그날 노무현과 나란히 앉았던 베란다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던 것이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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