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6

2009.12.22

침뜸의 효과를 누가 축소하는가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12-18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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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뜸의 효과를 누가 축소하는가

    이상호 지음/ 동아시아 펴냄/ 368쪽/ 1만6000원

    나는 비교적 건강한 체질이라 건강 관련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12월5일, 아버지 1주기가 되는 날 아버지를 떠올리며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를 읽기 시작했다. 어느 자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를 말했더니 누군가가 “‘황제내경’에 일구(一灸), 이침(二鍼), 삼약(三藥)이라 한 것처럼 뜸과 침이 우선인데 우리나라는 양의나 한의 할 것 없이 약 팔아먹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관절이 좋지 않아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약이 신장의 기능을 떨어뜨렸다. 신장에 문제가 생기니 대장염이 발병했다. 대장염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날 또 쓰러져 다른 병원에 입원했으나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그 일련의 과정이 정말 잠깐 사이 벌어졌다.

    장례를 치른 뒤 돌아가신 이유를 추적해보니 그때서야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환자의 몸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의사를 원망해봐야 가슴만 아플 뿐이었다.

    올해 95세로, 지난 80여 년간 임상 경험을 쌓은 구당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침뜸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그는 침구사 자격증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 재벌가 사람들, 유명 정치인 1000여 명이 그의 침뜸으로 효과를 봤으나 그는 남몰래 침놓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47년째 침구사 제도 입법화 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이 투쟁을 의료인으로서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인본주의적 보건의료 투쟁이자 의료 소비자의 주권회복운동으로 여긴다고 했다.

    한의사들은 탕약을 주로 하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의료 영업권을 유지하고자 침구사들이 침구 시술을 못하게 막아왔다. 그런 면에서 구당은 눈엣가시였다. 정치인들은 의료 소비자 주권회복운동을 막아서는 한의사들의 전형적인 기득권 논리에 눈치 보기 급급했다.



    2008년 정부는 구당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며 공을 인정했지만, 서울시는 면허 없이 뜸 치료를 했다는 이유로 45일 동안 침사 자격을 정지한다는 행정처분 통지를 보냈다. 대한한의사협회에서 구당이 침사 자격은 있지만 뜸사 자격이 없다며 고발한 결과였다.

    그 후 잠시 서울시 조치에 무료 침뜸으로 저항하던 구당은 현재 미국 의사들의 초청을 받아 애틀랜타 주 조지아의 한 병원 암센터에서 임상실험 중이다. 지금까지의 공동 임상연구는 대성공이었다. 말기 암 등 불치병과 만성 질환에 시달리던 환자들이 구당의 시술에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다. 미국 의학자들은 한두 번의 치료만으로 암 종양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들은 영화배우 장진영이 구당의 침뜸 치료를 받고 구토와 어지럼증이 사라졌다는 방송 인터뷰를 보고는 구당을 초청했다.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사가 아니라 소비자인 환자의 의학적 선택권을 존중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약 6년간 구당을 동행 취재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한 저자 MBC 이상호 기자는 “구당의 침뜸 의학은 동양철학이 인체에 적용된 변형일 뿐 그 자체가 동양의 자연관이고 인간관이며 세계관이다. 침뜸이 곧 동양철학이므로 침뜸이 미국 정신사에서 재조명되면 동양철학의 가치도 광범위하게 재인식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야 비로소 서양 정신의 일방 질주가 불러온 자연과 인간의 자본화와 그에 따른 지구적 병폐가 극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기자는 “구당의 화상침은 인류를 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단비이며, 대중적 뜸법인 무극보양뜸은 앞으로 미국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저비용 고효율의 의학체계에 입각한 대안적 의료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침뜸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이 기자의 예측이 실제가 되기를 나는 진정으로 기대한다.

    구당은 치료를 하면서도 늘 환자와 대화 나누기를 즐긴다고 한다. 환자 스스로 뜸을 놓을 수 있도록 뜸자리를 봐주다 보니 병증 관련 이야기든 일상사든 치료에 필요한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무척 감동 깊게 읽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런 배려와 환대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정신을 잃고 유언조차 없이 돌아가셨다는 데 화가 났다. 길가에 자라는 마른 쑥 한 줌, 침 하나로 인간을 치료하는 구당 같은 ‘나눔의 성자’가 마음 놓고 환자와 대화하며 치료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염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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