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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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의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

‘채굴장으로’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04-16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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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부녀의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시공사 펴냄/ 280쪽/ 1만원

    2008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채굴장으로’는 연애소설이다.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화가 남편을 둔 아소 세이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다. 학생은 9명뿐인데 교장, 교감, 쓰키에 등 교사는 3명이나 된다. 어느 날 도쿄에서 젊은 음악교사 이사와 사토시가 부임해 온다. 필자도 28년 전 한 그림 같은 섬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살갑게 다가왔다.

    아소 세이에게 이사와는 ‘미시루시’ 같은 존재다. 소설에서는 “이 섬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고 있다고 하는 신탁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다.

    소설은 3월에 시작해 다음 해 2월에 끝난다. 모두 12장인 것이다. 마지막 장인 2월 뒤에 한 달 건너뛰어 3쪽에 불과한 4월이라는 장이 하나 더 붙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소설의 후기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3월에 이사와를 처음 만나고 다음 해 2월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1년 동안 세이가 이사와를 사랑한 이야기다.

    두 사람 사이에 육체적 접촉은 없다. 이사와가 다쳤을 때 치료하면서 발 부위를 만진 것이 유일한 신체 접촉이다. 헤어질 때조차 이사와는 “안녕”이라 말하며 손가락 두 개를 자신의 입술에 댔다가 세이의 입술에 가져갔으나 입술 앞에서 딱 멈췄을 정도다.

    이 소설은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시선이 가고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것을 어떻게든 억제하려는 여자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남편은 아내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긴장하지만 조용히 대응한다. 사투리와 표준어가 섞여서 나오는데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 잘 드러난다. 처음 만나서 마음속으로만 간절하게 사랑하다가 그와 헤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밋밋한 소설이지만, 탁월한 심리묘사가 이 한 편의 연애소설을 격조 높은 수채화처럼 잘 짜인 연애소설로 승화시킨다. “문장이라는 피로 문학의 몸을 숨 쉬게 만들었다”는 평이 이 소설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소설의 조역 쓰키에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것을 대놓고 자랑한다. 본토 출신이라 ‘본토’라 불리는 남자가 섬에 나타나면 아무 곳에서나 섹스를 하기도 한다. 본토의 본처가 나타나 난리를 부리고 간 다음에는 이사와와 관계를 맺고 ‘잤다’는 말을 떠벌린다. 그 말을 들은 세이는 술에 취해 찾아온 쓰키에를 불러 세우긴 했지만 “분노의 열이 몸에 차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분노는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는 잠자는 남편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왠지 그가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발소리처럼” 듣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쓰키에의 맨션에 찾아가본다.

    또 다른 조역으로 시즈카라는 90세 노인이 있다. 그녀는 친척이 없는 독거노인이다. 시즈카를 매개로 세이와 이사와는 자주 만난다. 시즈카 노인은 병원에 입원해서도 음몽(淫夢)을 꾸면서 누군가를 불러댄다. 비 오는 날에도 남편을 맞이한다며 밖으로 나와 쓰러지는 등 매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세이의 소극적인 성격은 쓰키에와 시즈카에 대비되면서 전형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채굴장은 무슨 의미일까. 세이의 엄마는 채굴장 끝으로 걸어가다가 마리아상을 한 나무 십자가를 주워 왔다. 어머니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줬다. 아버지가 “당신, 이런 걸 잘도 발견했네” 하니까 어머니는 “채굴장 끝까지 자꾸자꾸 걸어갔지예”라고 대답한다. 그 십자가는 지금 세이의 남편 아틀리에 대들보 위에 걸려 있다. 이사와와의 관계가 종착점을 달려갈 즈음 세이는 남편의 아성인 아틀리에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그 조각상을 발견한다.

    채굴장은 ‘터널을 파나갈 때 가장 끝에 있는 지점’이다. ‘터널이 뚫리면 채굴장은 없어지지만, 계속 파는 동안은 언제나 그 끝이 채굴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까지 채굴장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직 나는 채굴장을 뚫지 못한 것 같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못 이룬 어떤 사랑, 누군가와 불같은 사랑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오른다.

    누구에게나 ‘미시루시’는 존재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다음에 나타난 또 다른 사랑, 마음이 한없이 끌리지만 더 나아갈 수도 되돌아올 수도 없다. 때로는 사랑의 불꽃이 너무 타올라 갱도를 뚫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이렇게 홀로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랑이라면 몇 개쯤 품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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