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4

2008.07.15

사람 중시 일본식 경영의 힘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7-07 16: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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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중시 일본식 경영의 힘

    <b>일본을 통해 본 한국경제 프리즘</b><br>전영수 지음/ 비즈니스맵 펴냄/ 404쪽/ 1만4000원

    반년 만에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의 대형 서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출판 흐름을 읽을 수 있어 나는 아이디어가 궁할 때마다 일본에 다녀오곤 한다. 물론 갈 때 일본 관련 서적을 한두 권 가방에 넣어 간다. 이번에 가지고 간 책은 ‘만들어진 나라 일본’(마쓰오카 세이고, 프로네시스)과 ‘일본을 통해 본 한국경제 프리즘’(전영수, 비즈니스맵)이었다.

    앞의 책은 정보공학자로 알려진 저자가 일본 역사에까지 진출해 일본의 독창적인 편집문화를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그 방법론으로 이미지를 뜻하는 ‘오모카게’와 변화를 말하는 ‘우쓰로이’가 일본의 문화·예술·사상·철학·종교 등에서 어떤 모습을 띠는지를 소개한다. 덕분에 일본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일본 서가에는 마쓰오카의 이름이 적힌 신간서적이 꽤나 눈에 띄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방법론은 꼭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 프리즘’은 경영·기업·트렌드·사람·투자 등 다섯 분야 36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오늘의 일본을 분석하고, 불황에서 헤매는 한국경제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 책이다. 검색의 시대에 키워드(팩트)로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는 방식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이 책은 퍼즐처럼 잘 짜인 구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버블 붕괴 이후 10년의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이 호황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도 ‘경제’라는 한마디만 외치면 다른 문제는 뒤로할 만큼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일본은 온갖 미디어에 활황, 부활, 회복 같은 낙관적인 단어가 넘친다.

    저자는 일본 부활의 신화를 만든 것은 결국 일본식 경영이라고 말한다. 캐논이 잠자고 있는 일본 열도를 깨운 것이나 도요타가 동명의 도시를 재정자립 최고 도시로 키워낸 데는 장기지향, 회사 우선, 온정주의 등으로 대치되는 일본식 경영이 있었다. 이에 비해 단기성과, 주주자본, 성과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식 경영을 서둘러 도입한 소니 같은 기업은 굴욕에 가까운 기업성과로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고도성장기 일본 하면 우리는 ‘회사인간’을 쉽게 떠올린다. 지금 정년을 맞이한 단카이 세대(1947~49년생)가 그들인데, 회사와의 공존의지를 평생 간직한 이들의 정신이 새삼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1990년대 초 전 세계를 휩쓸었던 마이클 해머의 ‘리엔지니어링’ 붐이 떠올랐다. 모든 기업에 존재하는 유휴조직이나 인력을 제거함으로써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자고 제창한 이 이론은 제창자 스스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고백할 만큼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이론에 따라 유휴인력을 제거하려 한 기업에서 정작 회사를 떠난 사람은 능력 없는 유휴인력이 아니라, 경영자의 속마음에 실망한 능력 있는 직원들이었으니 말이다.

    일본식 경영의 부활이나 리엔지니어링 실패에서 얻는 공통점은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업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일본경제의 최대 난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다. 양극화에 따른 성장의 과실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아 중산층 이하 국민은 여전히 냉기 속을 헤매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투자 →고용 →소비의 경제 선순환구도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제 일본의 상당수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뿌리째 흔들렸던 종신고용 시스템을 재도입하거나 고수하려 한다. 기업들의 인재 확보에도 비상이 걸려 전쟁을 방불케 한다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대학 3학년생에게 인센티브(장학금)까지 주며 입도선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단다. 올해 4월에는 정부까지 나서서 청년 비정규직, 고령자, 여성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3년에 걸쳐 22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이른바 ‘신고용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신입사원이었다. 2007년 이후 신입사원은 하루에도 수없이 매매하는 단타투자인 증권가의 ‘데이터 트레이더’에 비유됐다. 작은 이익과 불만에도 언제든 회사를 갈아타겠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서점에서는 ‘과장의 교과서’ 같은 부하 다루는 법을 소개한 책이 여럿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중 한 책은 출간 후 두 달도 되지 않아 10만부 넘게 팔렸단다. 어떤 기업에서는 과장급 이상 직원에게 후배 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라며 10만~30만 엔의 수당을 다달이 지급한다니, 곧 과장의 매뉴얼을 담은 책이 서점을 뒤덮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경제 프리즘’은 이런 현상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서도 상장기업조차 신입사원 셋 중 하나는 입사 1년 안에 사표를 던질 정도로 신입사원의 회사 부적응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책으로 신입사원의 회사 적응을 도울 연착륙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처럼 경제·금융 평론가인 저자가 일본경제의 부활 스토리를 제시하면서 한국경제가 고민해야 할 실마리를 하나하나 제시하고 있다. 다양한 자료를 소화해 소설처럼 잘 읽혀 독자가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한국경제 부활의 신호탄을 쏘겠다고 자처하는 분들은 이 책부터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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