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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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독 금물 …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읽어라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4-02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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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독 금물 …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읽어라

    <b>책을 읽는 방법</b><br>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문학동네 펴냄/ 217쪽/ 1만원

    열네 살의 아이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고 난 뒤 독서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뭐람’ 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소설을 100%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각사 쇼크’ 이후 아이는 한동안 미시마의 책을 섭렵한다. 그러다 미시마가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언급한 외국 작가들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토마스 만, 괴테, 실러, 도스토예프스키, 고골리 등의 작가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했다. 그런 다음 미시마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번에는 내용이 훨씬 잘 이해됐다.

    아이에게 미시마는 독서의 길라잡이가 돼준 보호자였다. 아이는 미시마를 통해 만난 다른 작가에게 빠져들면서 자신의 독서가 편향됐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책을 고르도록 주의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독서의 기쁨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깨닫게 된 것은 한 작가가 쓴 작품의 배후에는 엄청나게 광대한 말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아이가 바로 대학 재학 중에 신인 작가의 등용문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히라노 게이치로다. 그의 데뷔작인 ‘일식’(문학동네)이 한국에 소개됐을 때 책갈피, 카탈로그, 광고 등에 일관되게 실린 그의 얼굴 사진은 삐딱하고 반항기 가득한 시선을 보여주었다. 중후한 문체, 심오한 사고, 큰 스케일의 작품이라고 평가받은 ‘일식’은 히라노의 사진이 젊은 독자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바람에 더 많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책 읽는 방법을 다룬 책의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서평집이나 책 미학을 다룬 책까지 포함하면 지난 몇 달 사이 엄청나게 쏟아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휴대전화가 정보 송수신의 제왕이 되고 엄지손가락으로 쓰기가 일반화되면서 읽기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났다고 한다. 또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타자(他者)의 읽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는 시각도 있다. 출판평론가란 직업을 가진 내게 책에 대한 담론이 증가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리 없다.

    히라노의 ‘책을 읽는 방법’은 그중에서도 관심을 확 끌었다. 그가 권하는 독서법은 한 권의 책을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슬로 리딩, 즉 지독(遲讀)이다. 속독이니 다독이니 하며 되도록 빨리 많이 읽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그가 말하는 독서법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속독은 ‘내일을 위한 독서’이고, 지독(遲讀)은 ‘5년 후, 10년 후를 위한 독서’이기에 지독(知讀)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망라형 독서에서 선택적 독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말의 세계는 그 연결고리가 어느 한 곳만 끊어져도 작품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지구 규모의 매우 큰 지(知)의 구체(球體)이며, 그중 극히 작은 한 점에 빛을 비추는 것이 한 권의 책이다.

    하나의 작품은 지금까지의 문학이나 철학, 종교, 역사 등 방대한 말의 축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책을 서둘러 ‘앞으로’만 읽어나갈 것이 아니라, 좀더 ‘깊게’ 읽어야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

    그가 말하는 슬로 리딩에 가장 적합한 책은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교양이나 오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겪을 수 있는 경험은 한정돼 있고, 더군다나 극한 상황을 경험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우리 인생에 예고 없이 침입하는 일종의 이물(異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 속의 묘사와 설정 같은 노이즈(noise)를 꼼꼼하게 파악하는 것이 책을 뼛속 깊이 완전하게 맛보는 창조적 독서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예컨대 연애소설은 소설이라는 것이 처음 쓰인 이래 고상한 것에서 속된 것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것에서 지극히 세세한 것까지, 밝고 즐거운 것에서 슬프고 애절한 것까지 많은 패턴의 연애를 그려왔지만, 그 미묘하고 섬세한 차이는 노이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때 노이즈는 우리에게 현실의 다양함을 가르쳐주고, ‘연애’처럼 몇 번이고 되풀이돼온 주제도 항상 같지 않음을 알려줄 뿐 아니라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가능성(지(知)·즐거움·재미·감동)을 많이 맛보게 한다. 그러한 차이는 플롯을 무작정 따라가는 독서법으로는 결코 맛볼 수 없다.

    저자는 나아가 ‘작자의 의도’ 이상으로 흥미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풍요로운(창조적인) 오독’을 즐기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슬로 리딩의 비법이라고 치켜세운다. 문화는 전파 과정에서 ‘오독력’에 따라 풍부해지며, 이는 책도 마찬가지란다. 오독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려면 매번 조건을 바꿔 여러 차례 읽는 마음의 여유 또한 가져야 할 것이다.

    책의 양으로는 절반이나 되는 3부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카프카의 ‘다리’, 푸코의 ‘성의 역사’ 등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슬로 리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실전편이다. 이 부분까지 읽고 나면 저자가 작가가 된 근원이 슬로 리딩임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독자에게 읽는 방법에 더해 쓰는 방법까지 알려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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