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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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차 신나는 질주 비법 알려주마!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7-04-18 2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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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차 신나는 질주 비법 알려주마!
    TV CF에서 어눌한 말투로 “우리들의 열정으로”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GM대우 최고경영자(CEO) 닉 라일리.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인상 좋은 이웃집 아저씨로 남아 있는 라일리는 국내 외국인 CEO 중 ‘가장 친숙한 CEO’로 상생(相生)경영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라일리는 어떻게 4년 동안 덜컹거리던 대우자동차를 쌩쌩 잘 나가는 회사로 탈바꿈시켰을까. 또 그가 한국과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2002년 10월 옛 대우자동차 상황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이었다.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매출이 급감하고 재무구조가 부실해 회사는 퇴출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인수 작업을 끝낸 다음 경영책임자로서 나의 주변에 악어떼가 득실거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악어들이 기생하는 늪의 물을 몽땅 빼버리면 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사장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라일리는 한국의 독특한 기업문화에 주목했다. 한국의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희생정신도 투철하지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숨기려는 경향 때문에 문제점이 일찍 표면화될 기회를 놓쳐 옛 대우차가 위기에 처했음을 직시했다. 그의 앞에는 옛 대우차의 경영 혁신과 함께 붉은 띠를 둘러멘 노조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노조와 첫 만남을 가진 날.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 우렁찬 노랫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위협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날 회의에 특별한 규칙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라일리는 노조에 사업이 성장하면 해고자부터 복직시키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노조 곁으로 한 발짝씩 다가갔다. 밤을 새워 소주잔을 기울이고, 함께 뛰며 땀 흘렸다. 노조위원장 초청 신년 해맞이 등산에선 돼지머리 고사를 지내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등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인 경영자를 차갑게 바라보던 노조의 마음도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문화를 알아야 성공할 수 있음을 간파한 라일리는 한국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외국인 CEO였다. 취임 초기부터 부대찌개를 즐기고 폭탄주를 마시며 직원들과 어울렸다. 한국 임원과 인사를 나눌 때도 반드시 한국말을 쓰며 친숙함을 표시했다.

    2006년 5월2일. 이날은 대우차 해고자가 전원 복직된 역사적인 날이다. 2001년 2월 차가운 거리로 내몰린 1725명의 정리해고자 중 희망자 1605명 전원이 정든 일터로 돌아온 것이다. 라일리는 약속을 지켰다. 상생협력의 신화는 열매를 맺고 새로운 도약을 했다.

    그가 이끌었던 GM대우차는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 5년간 400% 이상의 매출 신장과 2년째 흑자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GM대우차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했고 GM그룹 내 핵심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일리는 4년간의 한국 근무를 마치고 지난해 7월 GM 아태본부 사장으로 승진, 중국 상하이로 근무지를 옮겼다.

    “한국이 최근 겪고 있는 경쟁력의 쇠퇴는 국가가 경제 외의 문제들에 관심을 빼앗긴 데도 원인이 있다. 수십 년 전에 누렸던 역량을 회복하려면 경제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 정당들이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결국 한국이 세계경제와 발전적인 사고의 주류로 나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쓴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토종기업을 탁월한 리더십과 상생경영 능력으로 이끈 닉 라일리는 글로벌화를 꿈꾸는 한국기업의 모범 사례임이 분명하다.

    닉 라일리 지음/ 윤동구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280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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