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2006.11.21

‘도전과 응전’ 한국 경제 다시 보기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6-11-15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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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과 응전’ 한국 경제 다시 보기
    시중에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마솥에 열심히 밥을 지었더니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맛있게 먹어치웠다. 뒤이어 김영삼 대통령이 가마솥을 박박 긁어 누룽지를 챙기다 보니 바닥에 구멍이 났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 가마솥을 때우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정권에 따라 변화한 한국의 경제 상황을 빗댄 것인데 제법 그럴듯하다. 한국 경제는 1961~86년까지 권위주의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성장전략은 한계에 부딪혔고 1987년을 기점으로 대전환을 맞았다. ‘한국 경제 20년의 재조명’은 87년 이후 20년 동안의 한국 경제를 조망한 책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과 경제학 교수 등 8명의 저자들이 87년 체제와 외환위기를 중심으로 한국 경제 영욕의 시간을 되짚었다. 일반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하다.

    1987년은 한국 경제구조의 변혁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해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87년은 정치 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자유화·개방화를 촉진해 경제 운용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 저자들은 87년 체제를 긍정과 부정 양 측면에서 진단한다. 87년 체제가 가져온 가장 큰 수확은 경제적 자율 확대와 이로 인한 기업의 급성장. 기업들은 정부의존적인 각종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데다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의 3저 호황을 거치면서 급성장했다. 30대 기업집단의 자산 규모는 89~91년 연평균 30%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동반했다. 민주화와 자유화에 걸맞은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집단 간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졌고, 이런 문제들이 뒤섞여 결국 1997년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책은 외환위기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동안 출간된 많은 외환위기 연구서들이 위기의 원인과 그 이후의 제도개혁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 책은 위기에 대한 한국 경제의 응전과 그 비용까지 논의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 정부는 IMF 금융지원 수용, 공적자금 투입, 원화가치 저평가 유지, 구조개혁 전략으로 응전했다. 저자들은 이 과정에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했다고 진단한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이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외화유동성이 개선됐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국제기준 이상으로 높아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국민의 고통과 국가 채무의 증가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결과였다. 외환위기라는 도전에 대해 경직되고 급진적인 시스템 개혁으로 응전한 결과 한국 경제의 최대 장점이던 역동성과 성장 능력이 훼손됐다. 위기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장기적 성장 능력을 확보하는 시스템 구축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밖에도 한국 경제 시스템의 재검토, 제도개혁의 득과 실,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 평가, 한국 경제의 희망 등에 관해 폭넓은 진단과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전망에 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교역 규모는 각각 세계 11위와 12위다. 그러나 투자 부진, 성장 잠재력 저하, 양극화 등 한국 경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저자들은 한국 경제가 성장 활력을 높여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멍난 가마솥을 때운 우리 경제는 이제 새로 맛있는 밥을 지어야 한다. 과연 누가 밥을 지을 것인가?

    홍순영·장재철 외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33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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