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6

2006.08.01

양심 위해 목숨 건 사람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6-07-31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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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 위해 목숨 건  사람들
    ‘자신에 대한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양심(conscience)이란 단어는 라틴어 ‘con-scientia’에서 유래했다. 양심은 인간 내면에 존재한다. 양심은 선악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고, 정의와 진리의 원칙을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시대의 억압에 맞서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위대한 자유와 용기를 말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과오 중 하나가 마녀사냥이었다. 한 여성에게 마녀 낙인을 찍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교회에 가는 일이 너무 드물거나(무신앙) 너무 잦아도(위선), 너무 수다스럽거나 너무 말이 없어도,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영리해도 마녀로 몰릴 수 있었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던 암울하고 기막힌 불행의 시대. 예수회 신부 프리드리히 폰 슈페는 펜을 들고 마녀사냥의 광기에 맞선다. 그의 저서 ‘법적 의문점 경고’는 마녀사냥의 실체를 낱낱이 폭로해 사람들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다.

    “내 양심에 맡기는 것이 올바르며 정당한 일이다. 나는 왕보다 양심에 더 큰 복종의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왕 헨리 8세는 토머스 모어의 명성과 능력을 이용해 아들을 낳지 못한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의 결혼을 추진한다. 그러나 모어는 양심을 걸고 재혼을 반대한다. 결국 헨리 8세는 한때 친구였던 모어를 참수형에 처한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 게슈타포 지휘본부에 도시 곳곳에서 발견된 ‘히틀러를 끝장내라!’ ‘자유!’ ‘대량 학살자 히틀러!’가 쓰인 전단지들이 쌓여갔다. 당시 분위기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잠자고 있던 독일인의 양심을 깨우기 위해 투쟁했던 인물은 스물한 살의 여대생 조피 숄. 데이지꽃을 좋아했던 조피 숄은 낡은 등사기 한 대로 나치 정권에 맞섰다. 역사학자 골로 만은 “독일 저항의 역사에 그들만이, 숄 남매와 그 친구들만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독일어를 말하는 인간들의 명예를 구하기에는 충분하리라”고 말했다.



    60세 노인 에밀 졸라는 고민 끝에 전세 마차를 불러 로로르 신문사로 향한다. 그는 발행인 조르주 클레망스에게 원고를 건넨다.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원고는 모두가 죄인으로 몰아갔던 드레퓌스의 편에 서서 절대권력 군부에 맞서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삶,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에도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갈릴레이는 학자로서의 신념을 걸고 절대 교권에 도전했다. 망원경을 제공해준 파도바, 피렌체, 피사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거나 눈속임일 뿐이라고 발뺌했다. 그의 논문을 쳐다보는 것조차 거부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는 “지상에서는 하늘에 있는 내 작은 것들을 보려 하지 않았지만, 이제 하늘로 올라갔으니 어쩔 수 없이 똑바로 봐야만 할걸”이라고 말한다.

    양심은 선천적 본능일까, 후천적 학습에 의한 것일까. 프로이트는 이성에 예속됨 없이,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율성 없이 교육받은 어떤 것만을 의미한다고 했다. 반면 구스타프 융은 의무와의 충돌로 선과 악 사이에서 결정 내릴 것을 강요받을 때 윤리적 양심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만약 양심이 없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됐을까. 오래전에 혼돈과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양심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죽음을 불사할 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민의 삶에서 양심은 자신과 사회를 지탱하는 또 다른 정의의 힘이다. 양심에 털 난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젊은 시절 공짜 기차를 탄 한 50대는 몇십 년 후 그 수십 배에 해당하는 차비를 보내온다. 아직 양심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지그프리트 피셔 파비안 지음/ 김수은 옮김/ 열대림 펴냄/ 432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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