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2

2005.07.05

‘약초의 힘’ 시대를 뛰어넘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5-07-01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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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초의 힘’ 시대를 뛰어넘다

    기젤라 그리이헨 편저/ 박해영 옮김/ 이가서 펴냄/ 352쪽/ 2만3000원

    “파라오가 위독하다.” 기원전 1213년 여든 살 노인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치료하듯, 시의(侍醫)들은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에게 강한 향을 지닌 물질을 투여했다. 유황, 몰약, 테르펜틴과 같은 방향성 식물을 태우고, 카모밀라 꽃이 든 방향성 연고를 람세스 가슴에 문질렀다. 인도에서 온 기적의 식물인 후추도 마련해두었다. 또 여러 식물의 씨를 첨가해 만든, 관절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고를 계속해서 무릎과 팔꿈치, 골반에 발라주었다.

    람세스 2세는 서른 명이 넘는 아들을 두었다. 비아그라를 처방할 수는 없었지만, 시의들은 정력에 좋은 신비한 약초와 뿌리를 알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나일 강가에는 파란 수련이 비아그라와 유사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라진 문명의 치료지식을 찾아서’는 독일 공영방송 ZDF TV 다큐멘터리 ‘초록 신(神)들의 주문에 사로잡혀’의 성과를 활자로 옮긴 것이다. 고고학자와 식물학자, 약리학자 등이 참여한 탐사팀은 파라오 제국, 마야인, 고대 인도 아유르베다(Ayurveda) 등을 찾아나섰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쳐 보존돼온 과거 문명의 치료지식과 효능을 검증하고, 그것이 현대에서도 아직 유용함을 밝히고 있다.

    고대 이집트 의사들이 소중히 여겼던 것은 무엇일까. 항박테리아 및 염증 억제 효과가 있는 방향성 수지(樹脂·나무에서 나오는 진)인 몰약과 유향이다. 유향은 어떤 물질보다 처방전에 자주 거명되었던 식물 추출물로, 쉽게 설사를 하게 만들고 상처를 낳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나일 강변엔 치료식물이 널려 있었다. 아카시아, 수양버들, 팔레스타인산 대추나무, 이집트 무화과 등의 잎과 열매는 물론 아주까리씨에서 짠 기름이 치료에 활용되었다. 또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파를 높이 평가했다. 양파는 여러 종창과 특히 뱀에 물린 데 효과있는 외용제로 사용됐다. 이집트인들은 양파가 마력을 지니고 있어 뱀을 쫓아낸다고 생각했다.



    인도 국민의 75%는 아직도 아유르베다에 의지하고 있다. 인도 의술에는 오랜 전통의 약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인도 음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카레다. 이 카레의 주요 성분이 강황(울금)이다. 강황은 소화기능 장애에 도움이 되고, 위와 장의 염증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인도의 아유르베다 약제 생산은 과학적인 검증과 관계 없이 수천년의 전통을 간직하며 인도인의 건강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위대한 문명을 일군 마야인의 후손들은 수백년 전부터 정글에서 살며 세대를 이어 전해진 수많은 약초의 효능을 알고 있다.

    대략 3만 가지의 식물종이 멕시코 의학에 알려져 있고, 민간의학에서는 5000개 이상의 식물이 치료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정글의 식물 천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발견된다. 마야 후손들은 지금도 뱀에 물리거나 병에 걸리면 땅에서 자라는 녹색잎들에 의지한다.

    악마의 척추라고 부르는 ‘마요르’는 두통을 없애는 데 사용되고, 어떤 식물은 심지어 암 질환과 당뇨병까지 예방한다고 한다.

    현대의학이 발전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위협을 받고 있다. 약에 대한 저항성이 커지면서 어떤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 병을 고치러 병원을 찾았다가 오히려 병을 얻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화학적으로 생산된 약품들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민간요법과 자연치료 요법이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이 어렵고, 전통적인 자연요법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고민이 있다.

    몰락한 문화에서 보물처럼 사용된 약초를 찾아나선 독일 탐사팀의 눈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의 치료식물들이 오늘날 수백만 환자들의 질병을 떨쳐낼 수도 있다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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