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3

2005.05.03

100년 전 학교에선 어떤 일이…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5-04-28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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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학교에선 어떤 일이…

    이승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76쪽/ 1만4000원

    학창 시절은 힘들다. 그러나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으레 학창 시절 이야기가 가장 훌륭한 안줏감으로 올라오게 마련이다. 수업 시간에 졸다가 선생님에게 걸려 얻어맞은이야기부터 연애 이야기, 서로 도시락 반찬 빼앗아 먹느라 전쟁터가 되어버린 점심시간 등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학창 시절의 추억거리는 무수히 많다.

    1979년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이승원 씨 역시 남들과 같은 학창 시절을 거쳤다. 그는 오른쪽 가슴에 큼지막한 이름표를,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등교했던 그때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침마다 일렬로 줄 서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애국가를 부르고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던 일이며 손발톱 위생검사, 때때로 하는 채변검사 등은 괴로운 기억들이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에도 그러한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학교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그것도 자신이 다니던 시절의 학교 이야기도 아니고, 현재의 학교 이야기도 아닌 무려 100년 전의 학교 풍경을 다룬 ‘학교의 탄생’이다. 그는 이 책에서 100년 전 학교의 풍경을 세밀히 담았다. 그리고 그 시절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이 책은 100년 전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시험 때 어떤 부정행위를 했는지, 또 성교육과 외국어 교육은 있었는지 등 생각해보면 참으로 궁금하고 신기한 옛날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100년 전 학교의 모습을 통해 근대의 일상을 탐험하려는 의도가 역력히 엿보인다. 뿐만 아니라 국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그의 글 솜씨가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883년 ‘원산학사’가 생기고, 2년 뒤엔 배재학당이 설립됐다. 그러나 서당이 아닌 신식 학교에 학생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학생들이 입학했지만 지금과 같은 어린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상투 틀고, 갓 쓰고, 아이가 서넛 딸린 장년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배재학당의 경우 지원자가 없다 보니 학생들에게 공책과 연필, 그리고 점심 값까지 지불했다. 여학생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 1886년 설립된 이화학당은 천연두에 걸려 버려진 아이들을 치료해준 뒤 제자로 받아들였을 정도다.”

    그 뒤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종의 ‘교육조서’가 나오고 신학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점차 학생 수는 늘어났다. 초기 근대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평민이었지만 양반도 섞여 있었다. 저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이 근대 학교를 “사농공상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 총집합한 종합선물 세트”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당시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가르쳤을까? 수신(修身), 작문, 독서, 문법, 역사, 산술(算術), 지리, 과학, 체조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년이 지난 1906년부터 일본의 통감부가 국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교과 과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어와 한문이, 지리와 역사가 각각 하나로 통합됐고, 일본어가 주당 6시간이나 차지하는 비중 있는 과목으로 얼굴을 내민다.

    이밖에도 학교 가는 길에 벌어진 다양한 일화와 단발(斷髮)을 둘러싼 갈등, 학교 운동회를 통한 근대적 스포츠의 태동, 선진 학문을 배우기 위해 바다를 건넌 유학생들의 생활상, 일제에 대항한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학교에 대한 역사서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저자는 100년 전의 학교가 빅뱅의 공간이었다고 했다.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무지한 인민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학교는 탄생했고, 철저하게 ‘낡은 삶과 습관’에 대항해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온갖 이질적인 담론과 풍속이 교차하는 공간이었기에 그 속에서 학생들은 새 문명을 만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혁명적인 공간이었다.

    지금의 학교는 어떤가. 과연 학교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100년 전의 학교와 비교해볼 때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 Tips

    원산학사

    1883년 함경남도 원산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 학교.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원산 감리인 정현석이 설립했으며, 정부에 보고해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다. 학습 기간은 1년이었고, 문예반과 무예반이 있었다. 당시 원산엔 항(港)이 개항되면서 일본인 거류지가 생겼고, 일본 상인들이 활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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