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1

2005.04.19

아프리카 살리는 ‘녹색 女戰士’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5-04-15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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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살리는 ‘녹색 女戰士’

    슈테판 에레르트 지음/ 김영옥 옮김/ 열림원 펴냄/ 280쪽/ 1만원

    1980년대 초 다니엘 모이 케냐 대통령은 수도 나이로비 한복판에 있는 우후루공원에 60층짜리 초고층 건물 ‘케냐 타임스 타워’를 신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건물이 들어설 경우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 호텔, 극장, 쇼핑몰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유치함으로써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이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은 나이로비의 가장 풍요로운 녹지가 파괴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들은 곧 커다란 저항에 부딪혔다. 타임스 타워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왕가리 마타이는 정부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뜻을 꺾지 않았고, 결국 92년 케냐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나무들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는 바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기록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슈테판 에레르트는 현장 취재와 문헌 조사, 마타이의 가족·동료·친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삶의 행로를 깊이있게 추적했고, 이를 글로 옮겼다.

    현재 케냐의 환경·천연자원·야생동물부 차관인 마타이는 한평생 나무를 심고 가꾸고 지켜온 환경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여성운동가, 제삼세계 운동가다. 2004년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지만, 그 이전까지 마타이가 받은 고통은 실로 엄청났다.

    “그들은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친구들은 그녀에게 경고했다.

    “그래, 그들은 나를 죽일 수도 있어. 그렇다고 언제나 그들이 끼칠 해악만 생각하고 있으면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없잖아. 위험은 그냥 잊어버리자.”



    마타이가 어떤 위험에 직면해 있었고, 또 어떤 의지로 이를 극복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화다. ‘타임스 타워’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모이 대통령은 “이 여자는 경계를 넘어섰다. 그녀는 여자가 남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아프리카의 관습을 망각했다”며 분노했지만 자신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마타이는 환경운동 시위 도중 여러 차례 폭행을 당했다. 특히 99년 카루라 숲을 지키기 위한 시위를 하다 경비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머리에 상처를 입었던 사건은 전 세계에 긴급 타전됐다. 이 사건이 국제 여론에 의해 맹렬하게 비난받으면서 마타이는 타임스 타워 사건 이후 정부와의 싸움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더욱이 이 사건 이후 모이 정권의 근간은 더욱 흔들리게 됐고, 2002년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환경운동과 그에 따른 투쟁으로 점철된 마타이의 삶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풍요롭고 편안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교육열과 자신의 재능 덕에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할 수 있었고 동아프리카 여성 가운데 첫 박사, 나이로비 대학의 첫 여성 교수라는 순탄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남성 우대 정책에 반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타이의 삶은 큰 변화를 맞았다.

    학교 당국에 의해 기피 인물로 낙인찍혔고,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사표 제출을 강요받았다. 결국 국회의원 입후보 시도도 좌절되고 남편과도 이혼한 마타이는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성 실업자로 전락했다.

    빈곤에 시달리던 마타이는 81년 유엔에 ‘그린벨트 운동’을 프로젝트로 신청해 매달 소액의 월급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나무들의 어머니로 거듭나는 출발점이 됐다. 그린벨트 운동은 86년부터 ‘범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워크’로 확대돼 탄자니아, 우간다, 에티오피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큰 성과를 낳았다.

    독자들은 ‘왜 그녀가 이다지도 나무심기에 집착했을까’ 하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확신에 찬 말을 통해 의문은 금세 풀릴 것이다.

    “무한한 지혜를 가진 신은 지구를 창조할 때 다른 피조물들을 창조한 뒤에 맨 나중에야 인간을 창조했다. 신은 알고 있었다. 인간을 가장 먼저 창조하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죽는다는 것을. 수, 목, 금요일에 만든 것이 없으면 인간은 스스로 생존할 수가 없다. 인간에게는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땅속 무기질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에겐, 지구가 허락하는 마지막 날까지 피조물들과 조화롭게 살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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