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0

2004.09.02

중국 뒷골목 삶의 그늘 만나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4-08-27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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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뒷골목 삶의 그늘 만나다
    한 세기 동안 거대한 대륙 중국은 엄청난 격동의 물결을 건너왔다. 개혁개방 이후 연 10%씩의 고도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지구촌 경제를 이끄는 주요 시장이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과 경제중심지 상하이 동방명주 등에서 역동적인 중국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관광지나 대도시 위주로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에 기가 질린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성장의 스포트라이트가 강할수록 주변의 어둠은 짙을 수밖에 없다.

    ‘저 낮은 중국’의 저자 라오웨이(老威)는 개혁과 성장의 강을 건너면서 주변인으로 전락한 16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인신매매범, 불법 인력거꾼, 가라오케 아가씨는 물론 마약중독자, 거리의 맹인악사 등 소외된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펼쳐진다. 하늘만 믿고 죽어라 땅만 파던 농사꾼 쳰구이바오(錢貴寶)는 5년 동안 20여명의 부녀자를 팔아먹은 인신매매범이다. 독생자녀 정책에 관계없이 아이 셋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구치소에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난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음양의 조화를 위해 돈을 조금 받았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개혁개방이 도시를 휩쓸었지만 산골 동네에는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아. 그래서 직접 개혁개방에 나섰지. 내가 여자를 속인 게 아니라 그들이 필요해서 따라나섰을 뿐”이라며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를 낸다.

    쓰촨성(四川) 청두(成都)시 주엔교 근처 골목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자오얼(趙二)은 쓰촨성 북부 어느 광산에서 석탄 파는 일을 하다 외지로 나온 지 벌써 7년째다. “80년대는 탄가루를 뒤집어써도 그나마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는데 90년대 들어서는 굶어죽겠더라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가족 팽개치고 도시로 튀었지.” 길거리에서 뒹굴며 불법 인력거를 끌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집에 돈을 보낸 지 이미 오래다. “시골 애들은 밥도 빌어먹고 구걸도 잘해 굶어죽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인 이들을 신신인류라 한다. 이들은 자녀 하나 갖기 운동 덕에 소황제(小皇帝)로 대접받으며 성장해 물질적인 소비에 익숙하다.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한 18살 미스 웨이는 하루 새 벌써 세 군데 디스코테크를 돌았다. 명품을 좋아하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처음 만난 남자에게 집으로 가자며 화끈한 유혹을 한다.



    1980년대 저자의 문학친구 탕둥성(唐東升)은 90년대 도서상을 하며 돈을 벌었다. “한번 맛을 보니까 이거, 완전히 다른 자유로운 세상이 펼쳐진 거야.” 40살 되기 전에는 마누라밖에 몰랐던 그가 오입쟁이로 전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누라와 살을 맞대며 아무 일 없는 듯 지낸다.

    지금 중국 도시에서는 하루라도 공사가 없는 날이 없다. 건물은 올라가고도로는 넓어지며 날로 현대화되고 있다. 그러니 해마다 보금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도시 사람들로 이웃의 정이 사라진 뜨내기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청두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가 거주위원회 주임인 미다시(米大喜) 할아버지는 78살의 나이에도 세상에 대한 걱정과 불만이 여전하고, 대를 이어가며 살던 집에서 쫓겨나와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철거민 뤄웨샤(羅月霞) 아주머니는 새로운 환경이 편치 않아 마음이 여전히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가 있다. 장의사, 시체, 미용사, 장다오링(張道陵) 할아버지와 새로운 오락거리가 너무 많아 사실상 천대받는 민속예술가 런환친(林喚琴)의 넋두리는 우리 모습 과도 닮아 있다.

    변해가는 시절이 야속하고 잘나가던 옛날이 여전히 그리운 이들도 많다. 1966년 8월에 시작된 문화혁명은 중국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현장에서 몸으로 겪었던 일들도 생생히 증언된다. 초기 홍위병으로 거대한 교류의 행렬에도 참가하고 농촌으로 하방도 당한 류웨이둥(劉衛東). 부실기업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지만 젊은 날 문혁의 주역으로 산 자부심만은 여전하다. 학생이 교장을 때리고 스님이 주지를 끌어낸 일을 회상하며 “내 인생에서 문혁을 빼곤 남는 게 뭐 있나?”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공중변소 관리인으로 “옛날엔 똥차도 끌어보고 모범기관으로 뽑혀 마오 주석과 접견도 했지”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저우밍구이(周明貴)도 문혁 시절이 그립긴 마찬가지다.

    책 속의 등장인물은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하류층이다. 그런 만큼 문맥 곳곳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간혹 있다. 저자는 상세한 팁과 주석을 곁들여 남다른 공력을 들였다. 또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하층민들의 사진도 볼 만하다. 중국에 관련된 수많은 책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중국엔 언제나 깊고도 풍부한 저층사상이 있어왔다. 이야기들은 모두 후세에도 널리 전해져 한 시대의 증언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한다.” 저자의 말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라오웨이 지음/ 이향중 옮김/ 이가서 펴냄/ 376쪽/ 2만3000원

    Tips | 독생자녀 정책(獨生子女政策)

    ‘1부부 1자녀 두기’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인구억제 정책.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1979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정책을 따르는 부부에게는 보상을 하고 두 명 이상의 아이를 출산하려 할 경우에는 제재를 가해 출산을 억제한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으로 독생자녀 정책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자 84년부터 농촌 사람들에게는 첫째가 여자아이일 때 4년 뒤 두 번째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소수민족에게는 세 명의 자녀를 둘 수 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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