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9

2004.08.26

질병 만드는 사람에게 속지 마라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8-20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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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 만드는 사람에게 속지 마라
    ”건강하다고 하는 인간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병자다. 단지 그들이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녹이라는 의사는 오로지 환자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산골마을 생 모리스에서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아주 건강해서 의사를 찾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묘수를 생각해낸다. 먼저 마을의 학교 교사를 구슬려 주민들에게 미생물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강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 북치기를 고용해 새로 온 의사가 주민들에게 무료상담을 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했다. 그는 주민들과 상담한 뒤 특별한 증상을 언급하며 순진한 사람들에게 계속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하기 시작했고, 마을 전체가 거대한 병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1923년 파리에서 초연된 연극 ‘녹 혹은 의학의 승리’ 이야기다. 그런데 이 연극내용과 같은 의료행위가 현실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 세력이 출현해 인간에게서 건강을 몰아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의학’이며, 이 의술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

    독일 ‘슈피겔’지 의학 및 자연과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외르크 블레흐는 자신의 책 ‘없는 病도 만든다’에서 지나치게 상업화로 치달으며, 끊임없이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현대의학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건강산업을 이끄는 전 세계의 대형 제약회사와 국제적인 의사단체가 인류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건강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출산 노화 성생활 우울 죽음 등의 변화와 정상적인 행동양식조차 병적인 현상으로 진단받게 된다.

    예컨대 독일 예나팜과 베를린에 있는 한 회사는 전성기에 있는 남성 수백만명에게 ‘남성노화 신드롬’을 알리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것은 남성의 폐경기를 의미한다. 이 기업들은 여론조사기관과 홍보회사, 광고 에이전트 그리고 의학교수를 동원해 남성 폐경기를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남성 호르몬 생산 기능이 쇠퇴하는 것’을 개탄했다. 이들이 이런 캠페인을 펼치는 이유는 2003년 4월 독일 시장에 두 가지 호르몬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시시 신드롬’이란 게 있다. 1998년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광고를 통해 처음 알려진 이 질병은 우울증의 하나로, 경우에 따라선 향정신성 의약품을 이용해 치료해야 한다고 한다. ‘시시 신드롬’에 걸린 이들은 겉으로는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삶을 긍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자신의 병적인 의기소침함을 숨긴다는 것. 이 증후군의 이름은 영국 엘리자베스(시시) 여왕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가 이 증후군에 걸린 환자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5월 뮌스터 대학병원 의사들은 이 질병이 제약업계가 날조해낸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들은 이 질병의 증상을 학문적으로 입증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튀빙겐의 한 의사는 “불리한 외모가 질병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성형수술을 부추긴다.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에서 활동하는 한 개업의는 그 섬의 연금생활자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환경 때문에 ‘파라다이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너무나 쾌활한 사람들은 쾌활장애에 걸린 사람들로 간주된다. 이 장애는 무사태평함과 현실감 상실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대에 서면 가슴이 뛰는 것은 ‘사회불안장애’, 아이들이 반항적 행동을 하는 것은 ‘적대적 반항장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발기력 저하는 발기부전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 독일 사람들은 평균 수입의 14% 이상을 의료보험료로 지출해야 하는 현실에 봉착했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환자가 생겨나고, 그만큼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이런 아이러니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일 듯싶다.

    문제의 핵심은 진짜 질병을 경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질병에 걸린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건강한 사람들은 이런 ‘질병 고안자’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저자는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 적을수록, 그리고 의구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거짓’ 질병과 불확실한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해 의사가 왜 그 같은 질병으로 규정했는지, 환자 100명이 치료받을 경우 몇 명이 치료 효과를 보는지 등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라고 권한다. 그래야 병자로 전락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외르크 블레흐 지음/ 배진아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304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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