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6

2004.08.05

고대 선수들도 우승에 목맸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7-29 2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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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선수들도 우승에 목맸다
    살다 보면 골치 아프고 넌더리 나는 일이 얼마든지 생긴다. 올림픽 축제에서도 그만큼 나쁜 일이 있지 않던가? 거기서도 지독한 열기에 그을리지 않던가? 군중에 밟혀 뭉개지지 않던가? 다시 몸을 추스르기가 힘들지 않던가? …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앞으로 보게 될 근사한 구경거리들을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참으며, 실제로는 즐거운 기분으로 감내하고 있는 것 같다.”(2세기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

    8월13일 108년 만에 아테네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전 세계가 올림픽 열기에 휩싸여 있다. 단순히 운동 경기 차원에서의 관심을 넘어 서양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신화와 여행지로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출판계에서도 이와 관련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권삼윤씨의 역사기행서 ‘꿈꾸는 여유, 그리스’, 그리스 대사를 지낸 외교안보연구원 한태규 원장의 ‘아테네로 가는 길, 한태규의 그리스 문화 기행’,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 모습을 알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로베르 플라실리에르 지음) 등이 눈에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올림픽 2780년의 역사’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25컷의 사진과 그림, 고대 올림픽 전문가인 저자 주디스 스와들링의 해박한 설명은 독자들을 곧장 그리스로 데려간다.

    올림픽 경기는 고대와 현대 세계를 잇는 멋진 연결고리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체육을 통해 실현해주었다. 그래서 올림픽은 선수와 관객 모두 자신을 잊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거대한 스펙터클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신의 도움을 얻은 자만이 올림픽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일까. 바로 얼마 전 유로2004 축구대회에서 꿈만 같은 우승을 거머쥔 뒤 그리스 국민들은 “신들이 깨어났다”고 소리질렀다 한다.

    고대 올림픽은 초기에 펠로폰네소스 반도 안의 작은 나라에서 열린 행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3000년 전의 올림픽은 이미 국제적인 행사였다. 미노아 문명 이래로 그리스는 지금의 터키 이집트 리비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는 지중해 지역의 초국가적 공동체였고, 올림픽은 통합에 기여하는 매개체였다.



    고대의 체육은 지적인 교육에 종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은 철학의 본산지이자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한 체육관이기도 했다. 신체의 단련은 그만큼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더 나은 국가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잘 발달한 몸은 찬탄의 대상이었다. 모든 선수들이 경기에 나체로 참가하게 한 규정도 선수들에게 벗은 몸을 뽐낼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추측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고대 선수들의 스포츠 과학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들은 치료와 인간 신체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운동할 때 도움이 되는 식단과 훈련법, 상처에 대한 치료법 등을 저술에 남겼다.

    고대 선수들도 우승에 목맸다
    체육관에는 운동을 가르치는 교관뿐 아니라 마사지사·치료마사지사·체력 단련 전문가들이 머물렀고, 이들은 물리치료와 식이요법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돈을 벌었다. 선수들은 요즘 보디빌더들과 똑같이 근력을 기르기 위해 단백질을 대량 섭취했고, 과일과 채소 생선 해산물도 빠뜨리지 않고 많이 먹었다.

    또한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훈련 기간에는 성생활도 자제할 만큼 우승에 집착했다. 그것은 우승자가 모든 영광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올림픽 종목이었던 스타디온 경주(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단거리 경주)의 우승자 이름은 다음 4년간 날짜 기록 시스템의 이름으로 사용됐다. 게다가 아테네는 그들에게 최고의 보수를 지급했으며, 우승자의 고향 도시에도 충분한 현금과 숙식을 제공했다.

    현대 올림픽이 지나친 상업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고대 올림픽에서도 뇌물과 스캔들, 스폰서 제도, 대중 선전 등이 힘을 발휘했다. 도시 국가들은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육상이나 경마에서 우승해 이득을 챙기려는 도시국가에 ‘판매’하기도 했다.

    현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성공이 아니라 노력인 것처럼, 올림픽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 핵심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고 올림픽 정신을 말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여전히 우승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올림픽이 결국 신들의 경기가 아니라 인간의 경기임을 다시 확인케 해준다.

    고대 올림피아는 정치 집회장이었다. 체육관이나 운동회는 이상적인 정치 포럼장이었으며, 정치가들은 운집한 군중 앞에서 연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 철학자들의 강연과 음악 경연이 열렸다. 요즘 올림픽이 체육경기와 더불어 대규모 문화 이벤트를 함께 치르는 것과 닮았다. 어쨌든 정신과 육체, 정치와 예술, 인간과 세계의 통합을 꿈꾼 고대 올림픽 정신은 이렇듯 면면이 오늘날에 이어지고 있다.

    주디스 스와들링 지음/ 김병화 옮김/ 효형출판 펴냄/ 232쪽/ 1만5000원

    Tips | 주디스 스와들링 (Judith Swaddling)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로마 유물국의 부국장이며, 고대 올림픽 경기 분야의 전문가로서 전시회를 여러 차례 조직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제작한 고대 올림픽 다큐멘터리 비디오 ‘그리스에서 온 선물’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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