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2004.03.11

‘뇌와 의식’ 그 신비의 세계로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3-04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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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와 의식’ 그 신비의 세계로
    ‘한 마음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다.’

    대승불교 경전 ‘유마경(維摩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인간의 마음작용, 또는 마음가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나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변함없다. 데카르트도 “마음이 선량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했고, 셰익스피어는 “선도 악도 없다. 오로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소박한’ 믿음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엄숙한 과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듯 마음은 단지 생체조직의 단순한, 그러나 아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어떤 전기현상일 뿐일까.

    얼마쯤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책 ‘마음을 과학한다’가 눈길을 끈다. 물론 더 많은 의문을 품은 채 이 책을 덮게 된다 해도 마음에 대해 과학이 도달한 의문의 ‘최전선’이란 점에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스미소니언협회에서 주최한, ‘뇌와 의식’이라는 주제로 열린 시리즈 강의를 체계화한 것이다. 저자들은 인지심리학자 카렌 샤노어, 정신병리학자 프랑크 퍼트넘, 꿈 전문가 제인 가켄바흐, 심신의학자 디팩 초프라, 심신의학자 존 스펜서, 뇌 전문가 카를 프리브람 등 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마음 가운데서도 힘과 사랑과 지혜의 거대한 원천인 깊은 의식. 이것은 전지(全知)의 부분으로 경우에 따라 숨은 관찰자, 생각 뒤에 존재하는 생각하는 자, 지휘자, 우리 생각 사이의 공간, “불은 켜져 있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다”, 공(空), 슈퍼모나드(super-monad·넓이나 형체가 없는 궁극적인 실체·슈퍼단자), 영혼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우선 샤노어는 뇌 과학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마음이란 개념을 창안한 이는 17세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믿었으며 그 구별은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일 물리학자 프란츠 요제프 갈은 뇌와 사고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언어기능을 책임지고 있는 뇌의 부위도 정확하게 알아낸 인물이다.

    이런 생각은 그대로 현대에까지 이어져왔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우리의 마음을 단지 ‘고깃덩어리로 이뤄진 컴퓨터’라고 묘사하거나, 뇌를 신경세포 다발’이라고 유추할 정도로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그런 차원 너머에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심리학자 로렌스 바이스크란츠가 연구해온 맹시(盲視·blindsight)라는 신비한 현상이 있다. 이것은 시 지각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뒤 왼쪽 시야의 물체를 볼 수 없게 된 환자가 눈앞에 제시된 자극(수직선이나 수평선)을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수평선인지 수직선인지 맞춰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틀린 답을 말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빙의(憑依)로 알고 있는 다중인격장애도 뇌가 곧 마음이라는 유물론적인 생각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즉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인격 A와 B는 시력과 말투,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 등 육체적으로 너무나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말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일까. 퍼트넘은 다중인격장애를 비롯해 유년기의 정신상태에서 수행자들의 열반에 이르는 다양한 의식상태를 풀이하고 있다.

    고대 인도의 전통의학인 베다와 현대의학을 접목해 독창적인 심신의학을 창안한 초프라는 분자 수준의 세포들이 ‘의사소통’을 하고 일정한 감정과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마음에 대한 연구는 치료에까지 나아간다. 스펜서는 생각이 뇌를 변화시키는 사례를 플라시보, 즉 위약(僞藥) 효과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처방으로 전립선 환자의 30∼40%가 완치된 사례가 있다는 것. 심지어 샤노어는 최면요법을 통해 여성의 가슴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 사례를 소개한다. 마음의 전체상을 파악하지 못했다 해도 ‘한 마음 청정할 필요’는 충분하지 않은가.

    카렌 N. 샤노어 외 지음/ 변경옥 옮김/ 나무심는사람 펴냄/ 40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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