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2003.10.30

‘화려한 싱글’로 살아가기 매뉴얼

  • 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입력2003-10-23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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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싱글’로 살아가기 매뉴얼

    영화 '싱글즈'

    내나이 서른여섯 살에 결혼을 했으니 독신생활의 맛을 제법 아는 편이다. 그 당시엔 회사를 다녔는데 월급 받을 때마다 늘 억울한 게 하나 있었다. 가족수당이라는 부당한(?) 항목이 그것. 나는 회사 임원들에게 목청을 높여 말했다. “결혼한 자는 한 여자만 ‘관리’하면 되지만 독신자는 여러 여자에게 신경 써야 하므로 가족수당보다 더 많은 독신수당을 주어야 한다! 독신자는 결코 수도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내 ‘고견’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독신자는 혼자 사는 사람을 말한다. 나이 오십을 바라봐도 부모 밑에서 ‘빌붙어’ 산다면 그건 독신이 아니라 그저 미혼상태일 뿐(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독신의 참맛은 늦은 밤에 궁벽한 자취방으로 기어들어 ‘탁’ 하고 불을 켤 때의 그 고적하면서 얼떨떨한 기분에 있다. 집을 나설 때의 모습 그대로 자기를 맞아주는 쓸쓸한 사물들이 이루는 풍경. 일 년 열두 달 반복되는 상황이었지만 그 얼떨떨함은 한결같았다. 그때마다 방에 대고 말하곤 했다. ‘나는 지금 생존에서 퇴근하여 실존으로 출근한 거야….’

    독신생활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은 그것이 아직 우리에게 어떤 결여의 상태이거나 비정상적인, 특이하고 유별난 삶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특이하게 여기는 게 특이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국내 총 가구 중 15%가 독신가구이고 이는 머지않아 20%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30대 독신인구만 무려 150만명! 이 정도 숫자라면 독신자를 근시, 혹은 양 볼에 보조개가 팬 사람 정도로 심상하게 여겨도 될 일 아닌가.

    하지만 이 땅에서 독신, 그것도 독신여성으로 나이를 먹어가는 일은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이혼 후 혼자 살면서 온갖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화병, 위장병, 술병 등으로 몸을 망치고, 여러 번의 연애 실패와 돈 때문에 마음고생하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고 심리학 공부도 했다”는 40대 여성 프리랜서 작가가 절치부심 끝에 독신 매뉴얼집을 냈다. 책 제목이 내용의 모든 것을 축약한다. ‘혼자 잘 살면 결혼해도 잘 산다’. 그러니까 혼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폼나고 건강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지를 경험에 비춰 정리, 집대성한 일종의 자기계발서다.



    저자는 먼저 10가지 자아 테스트를 해볼 것을 권한다. 1. 혼자 충분히 먹고살 만한 경제력이 있는가? 2. 내 편이라 말할 수 있는 친구가 5명 이상 있는가? 3. 인생에서 꼭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가? 4. 아프면 종합검진을 받거나 보약을 지어 먹을 정도의 열성이 있는가? 5.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잘 어울려 대화할 자신이 있는가? 6. 혼자 식당, 극장, 술집, 여행지에 갈 수 있는가? 7. 푹 빠지는 취미활동이 있는가? 8. 효과적인 시간 관리능력이 있는가? 9. 외로움, 긴장, 불안, 두려움에 대한 감정 조절능력이 있는가? 10. 성적 충동에 대한 자기 통제력이 있는가? 이 10가지 질문 가운데 최소한 7가지에는 예스라고 할 수 있어야 독신으로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아무래도 이것이 내게는 성인(成人)이 될 자격조건처럼 여겨진다.)

    이 비좁은 관문을 통과한 독신 가능자에게 저자가 첫번째로 권하는 사항은 역시 자기 능력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것. 직업 선택, 개인 능력 함양, 여러 유형의 타인들과의 현명한 관계설정 등이 세심하게 논의된다. 이어 시간과 여가 관리, 재테크 방법, 사랑과 섹스, 건강관리, 집 구하기, 독신자만의 생활정보 등이 그야말로 동생을 염려하는 언니의 말투로 소상하게 설명된다.

    그렇다. 저자의 안내대로 한다면 혼자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둘이서도. 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생의 목표는 아닐진대 일종의 독신의 존재론이랄까, 자기 응시가 기혼자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강점을 좀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었으면 어떨까.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저자의 토로에 그 마음을 접기로 했다. “너(나)는 잘 살 거야.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 그러니 열심히 살아!!!” 그녀는 지나간 15년이 너무도 힘겨웠던 것이다. 이처럼 ‘살아남기 위한’ 책을 써야 할 정도로. 독신, 특히 독신여성의 삶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세상이 올 때까지 이 책은 유효하다.

    혼자 잘 살면 결혼해도 잘 산다/ 임계성 지음/ 큰나무 펴냄/ 288쪽/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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