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4

2003.05.15

인재 식별과 등용 비공식 참고서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5-07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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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 식별과 등용 비공식 참고서
    중국에서 ‘자치통감’이 통치자나 관료들의 공식 교과서였다면 ‘반경(反經)’은 비밀리에 곁에 두고 이용하는 일종의 비공식 참고서였다. ‘반경’을 쓴 당나라 사람 조유에 대해 중국 역사는 “병법에 박학하고 경세에 능했으며 은근히 지조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술은 “장점과 단점을 요령 있게 서술했으며 실제적인 쓰임새를 아주 중시했다”고 호평을 받았다.

    조유의 ‘반경’을 완역한 장순용씨는 “책략을 날줄로 삼고, 역사를 씨줄로 삼아 종횡무진으로 엮었다”고 말한다. 즉 요순시대로부터 당나라 역사까지 폭넓게 조감하며 권모술수가 얽히는 정치의 변화를 읽고, 인재를 식별해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두 가지 측면에 역점을 두고 쓴 책이다. 이 점에서 위나라 사람 유소가 쓴 ‘인물지’와 유사하나, 특정인에 대한 품평에 그치지 않고 인재 식별과 활용의 진수를 뽑아 정리했다는 점에서 ‘반경’이 한 수 위다.

    그렇다면 왜 ‘반경’인가. 중국 역사를 정면에서 다룬 ‘자치통감’과 달리 ‘반경’은 중국의 정치·외교·군사 등의 책략을 반면(反麵)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반면의 교훈’은 이 책 13장 ‘반경’ 편에 잘 나타나 있다.

    조유는 역대 중국 황제들이 나라를 다스려온 기본개념인 인(仁), 의(義), 예(禮), 악(樂), 명(名), 법(法), 형(刑), 상(賞) 등 8가지를 뒤집는다. 예를 들어 법령이 많고 명확할수록 범법자는 오히려 늘어나는 법. 가의라는 사람은 “법령이 출범하기만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법률의 허점을 연구한다”며 “도가 1척(尺)이 높으면 마(魔)는 1장(丈)이 높다”고 했다.

    상도 남발하면 역효과가 난다. 강태공은 “공로가 있을 때 상을 내려야지, 툭하면 상을 주는 것은 불평불만을 유발한다. 그 결과 만족하지 않으면 원한이 자라나게 되고 이것이 오래가면 도리어 원수가 된다”고 경고했다. ‘반면의 교훈’이란 이처럼 예상치 못한 역작용까지도 헤아리는 눈을 가르친다.



    조유는 ‘반면의 교훈’을 정리하면서 “어떤 법률이나 사상, 체제, 주의, 법규든 그 자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사람에 의해 운용되는데, 잘 운용되면 존재하고 잘 운용되지 못하면 없어진다”고 했다. 즉 같은 권모술수라도 군자가 정의로운 일에 쓰는 것과 소인이 나쁜 일에 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을 아는 것이 왕의 길이고, 일을 아는 것이 신하의 길이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경’은 통치자가 어떻게 인재를 발탁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강조한 책이다. 순자는 “남을 다스리는 자는 사람들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삼으며,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재능만으로 능력을 삼는다”고 했다. 즉 세상을 다스릴 지도자란 “자기가 갖추지 못한 것을 마치 갖춘 것인 양 사용하는 자”여야 한다.

    ‘반경’이 실제적인 쓰임새가 많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도덕적 원칙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옥으로 만든 배와 노는 강을 건너는 기능이 없는 것이요, 금과 옥으로 만든 활과 활줄은 화살을 쏠 기능이 없다”는 옛말을 예로 들며 고고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온건하고 고아하지만 다스리는 재능이 없는 사람은 인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위무지가 한나라 왕에게 진평을 추천하자 주위에서 “그는 형수와 사통한 데다 뇌물을 받은 적이 있다”며 반대했다. 이를 들은 왕이 위무지를 책망하자 위무지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재능이고 폐하가 들으신 것은 품행입니다.”

    ‘반경’은 나아가 재능에 근거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직권을 수여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의 원칙임을 강조했다. 즉 사람을 쓸 때는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감출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순자는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면 나라의 보배, 말할 줄은 모르나 일할 줄 알면 국가의 인재, 말할 줄은 알지만 일할 줄 모르면 나라의 도구, 듣기 좋게 말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조악하다면 반역”이라고 했다. 각자 그릇의 크기를 헤아려 쓸모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도자의 역할이다.

    8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을 한꺼번에 읽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반경’은 베갯머리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다. 당장 한 조직을 이끌게 된 사람이라면 5장 ‘지인(知人·사람을 아는 법)’을 펼쳐라. 사람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기법들이 정리돼 있다. 나아가 최고의 자리를 꿈꾸는 야심가라면 17장 ‘패도(覇圖)’를 놓칠 수 없다.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을 일으켜 천하를 얻는 지혜가 담겨 있다.

    반경/ 조유 지음/ 장순용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831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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