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3

2003.05.08

철의 여인이 본 현실적 힘의 외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4-30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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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의 여인이 본 현실적 힘의 외교
    전 세계는 이라크전쟁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의 굳건한 동맹을 확인했다.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에서 “냉전 종식 이후 더 이상 응집력 있고 단합된 서방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미국과 영국만은 예외였다. 그들이 단지 영어로 말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인가.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로 11년 반 동안 세계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최근작 ‘국가경영’에서 영국과 미국이 손잡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책의 초고는 2001년 9·11 테러 이전에 씌어졌다. 대처 전 총리는 이 책에서 9·11 테러 덕분에 “비극의 눈물에 의해 깨끗이 씻긴 눈으로 훨씬 더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 굳건한 보수주의자는 이 세상이 위험과 분쟁과 잠복하고 있는 폭력의 세계이며, ‘우리 문명’이 살아남으려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먼저 대처 전 총리가 제시한 불량국가 이라크 대응법을 보자. 그는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는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이라크 국민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의약품을 공급받지 못하는 것은 사담의 잘못이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사담이 무너지기 전에는 이 지역에 평화도, 안전도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결국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로부터 사담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예상되는 이들의 다음 목표는?

    저자는 책의 6장 ‘불량국가, 종교 그리고 테러리즘’에서 북한에 대해 ‘고전적인 불량국가’라고 못박으며 “북한과 같은 괴상한 정권을 상대할 때에는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북한의 모든 시설을 철저히 사찰해야 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원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시리아 역시 불량국가의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므로 현재로서는 아무런 호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고,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가 지배하는 한 결코 ‘안전한’ 곳이 될 수 없으며 카다피의 야심을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력동원’뿐”이라고 강조한다.



    대처 전 총리가 말하는 ‘우리’는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된 서방동맹국들이다. 물론 미국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현 상황에서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물질적 능력은 물론 도덕적 능력까지 지닌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운명은 곧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의 운명과 함께한다”는 말에서 영국이 자기 일처럼 이라크전쟁에 미국과 함께 나선 까닭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미국과 서구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처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세계적인 탄도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이라고 말한다. 대처 전 총리의 입장에서 미국과 서구동맹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상대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오늘날 이빨 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지만 여전히 엄청난 양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러시아를 상대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안보’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시아에서 중국은 강력하지만 아직 초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다. 언젠가 공산주의를 포기해야 하고 ‘근본적인 경제개혁’에 착수해야 하는 중국의 사회적, 정치적 미래는 불확실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무장을 강화하고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도 있다.

    한편 대처 전 총리는 관료적인 유럽 초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제3세계를 향해 세계화 추세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때문에 제3세계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제3세계의 불행이 조금이라도 서구 탓이라면 바로 서구가 마르크스 와 그 후계자들을 길러냈다는 점이 문제”라고 빈정거린다. 국제자본주의의 탐욕, 다국적기업들의 영향력을 탓하기 전에 나라를 잘못 다스린 제3세계 정부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서는 오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처 전 총리의 ‘국가경영’은 많은 독자들을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 국가안보 대신 인권을, 국방비 대신 복지를, 그리고 지구촌 한 가족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 속에서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두겠다는 것과 같다”는 대처 전 총리의 지적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순진한 이상주의를 버리고 힘의 균형과 단호한 국가방위체제 구축을 역설한 ‘국가경영’을 통해 적어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마거릿 대처 지음/ 김승욱 옮김/ 경영정신 펴냄/ 650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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