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8

2003.04.03

제국주의와 이슬람 왜 싸우나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3-27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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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와 이슬람 왜 싸우나
    기어이 전쟁은 터졌다. 프랑스와 독일은 연일 선제공격을 감행한 미국을 비난하고, 영국은 미국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북핵이라는 예민한 사안을 안고 있는 한국과 일본도 미국 지지를 선언했다. 자, 이 판에서 어떤 기준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할 것인가. 과거의 동맹은 휴지조각이 됐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도 이 사태를 해석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 의문의 해결은 ‘근본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타리크 알리의 ‘근본주의의 충돌’은 이 전쟁을 제국주의적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충돌로 본다. 이 책의 부제가 ‘아메리코필리아와 옥시덴털리즘을 넘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메리코필리아는 종교적 심성에 기초한 미국의 맹목적 애국주의를 가리킨다. 옥시덴털리즘은 서구를 타자로 상정함으로써 미국인과 미국적인 것을 반대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를 말한다. 아메리코필리아에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폭력성이, 옥시덴털리즘에는 이슬람 지배층의 정치적 야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타리크 알리는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이후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이 됐다)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1960년대 파키스탄 군사독재에 저항하다 영국으로 영구 추방됐다. 그 후 적극적인 반전운동을 펼치며 ‘뉴레프트 리뷰’ 편집장을 역임하는 등 좌파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슬람 5부작’으로 불리는 소설 외에 역사와 정치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무신론자인 그는 종교가 이데올로기적 기만의 집합체이며 제도적 억압체계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스러운 이슬람 전사들의 대장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악의 축’을 없애는 데 앞장선 ‘착한 나라’의 대통령 부시를 똑같이 비판한다. 전 세계를 훈육하기로 결심한 제국주의적 근본주의(미국)와 그 대척점에 있는 이슬람의 종교적 근본주의는 지금 인류에게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총 4부와 부록(대담)으로 구성된 이 책은 4분의 3 가량을 이슬람 세계와 역사에 할애했다. 저자는 무신론자가 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의 기원과 지난 세기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된 모든 갈등의 양상과 원인-시오니즘, 1차 석유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카슈미르 분쟁 등-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결국 오늘 이 전쟁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기 위한 배경지식이다.

    9·11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이 “전지전능한 알라의 명에 따라 아메리카의 핵심기관들을 공격했다”고 하자 뜻밖에 미국을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반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참으로 놀랍군. 난 우리나라가 얼마나 착한 나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런 분노를 믿을 수 없다”며 보복을 준비했다. 부시의 생각은 대다수 미국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런 충돌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서구가 중동을 점령한 지난 200여년의 역사에서 원죄를 찾는다. 영국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세계는 중동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적극 활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이 지역에서 가장 반동적인 세력(대부분 강경파 종교 근본주의자들)들을 지원함으로써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견제했다. 이집트의 나세르에 대항한 이슬람형제단,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에 대항한 이슬람연합, 파키스탄 부토에 대항한 이슬람당, 그리고 나지불라에 대항한 오사마와 친구들 등이 한때는 미국의 친구였다. 하지만 이후 이들은 미국을 향해 칼을 드는 세력이 된다. 결국 미국의 제국주의적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서로의 필요에 따라 상대를 이용하고, 또 비난하면서 오늘의 충돌을 키웠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누구의 탓인가.

    ‘근본주의의 충돌’은 2001년 9·11테러 직후 씌어졌고, 물론 2003년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공습 개시 이전에 출간됐다. 하지만 상당한 분량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라크의 긴박한 전운을 전하고 미국의 전쟁논리를 분석했다. 비록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큰 어려움 없이 이끌어내리라는 그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체니와 럼스펠드가 이런 절차들을 아주 귀찮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대상은 이라크의 살상무기가 아니라 ‘제국의 힘’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CNN의 전쟁 생중계에 눈과 귀를 빼앗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근본주의의 충돌/ 타리크 알리 지음/ 정철수 옮김/ 미토 펴냄/ 51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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