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0

2000.11.23

한국문학 100년의 발자취를 찾아

  • 입력2005-05-31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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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100년의 발자취를 찾아
    어느 시인은 ‘내 인생의 8할은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내 인생의 8할은 책이다. 너무나 절망스러워 세상을 버리자고 결심하던 삶의 극단에 섰던 순간에도 내 옆에 책이 있었고, 영혼의 허기로 불안에 휩싸여 방황하던 순간에도 내 옆에 책이 있었다. 책은 유혹이고, 매혹이고, 반역이고, 혁명이고, 그리고 운명이다. 아주 짧은 삶이긴 하지만 책 없는 나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다. 책은 내 혈관에 피를 채워주었고, 내 몸의 살이 되었다.”

    92년 10월 말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장석주씨(당시 도서출판 청하 대표)가 출옥 직후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필화사건으로 일렁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 그의 곁을 지켜준 것도 책이었다. 마침 그 무렵 시공사로부터 ‘한국문학백년사’ 집필 제의가 들어온 것은 그에게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기초자료를 조사하고 도서관과 신문사에서 자료를 찾아 복사하고 관련 서적을 읽어내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의 표현을 빌리면 ‘초식동물처럼 느릿느릿 되새김질하며 쓰는 데’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초고가 200자 원고지 2만장 분량. 작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이 통사적으로 집필된 여느 문학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20세기에 생산된 한국문학을 통해 그것의 발생론적 배경인 사회 역사적 조건을 읽어내고, 거꾸로 그것에 투영돼 있는 우리 삶의 숨결을 느끼도록 한다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이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문학의 유동성은 현실의 유동성에서 나온다. 최남선-이광수의 개화 또는 계몽시대로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분단시대와 산업화 시대, 세기말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봉건주의의 밀실에 스며든 서구의 모더니티라는 한 줄기 빛의 추동성에 의해, 티끌처럼 떠도는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변해왔고, 이에 따라 문학도 변해왔다. 그 변화의 속도, 변화의 총량, 변화의 파장을 따라가며 궤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저자의 야심이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전 5권 1300쪽 분량)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1권(1900~1934)은 낯설고 위협적인 손님으로 찾아온 ‘현대’, 즉 1900년대 개화-계몽문학부터 사실주의 문학의 발아과정과 최남선 이광수 김억 등 우리 근대문학의 별들이 남긴 작품세계를 소개했고, 2권(1935~1956)에서는 해방 전후, 전쟁 전후 이념의 혼란과 격동기의 문학을 다뤘다.



    3권(1957~1972)은 4·19와 5·16, 유신과 반공주의로 암울한 혼돈의 시대에 문학으로 현실에 참여하려고 한 작가들, 그리고 한글세대가 보여준 감수성의 혁명과 더불어 문단의 새 봉우리들을 만날 수 있다.

    4권(1973~1988)은 최인호로 대변되는 청년문화가 고개를 내밀고 민중문화가 꿈틀거린 시기를 담았고, 5권(1989~200)에는 도시환경과 후기산업사회에서 싹튼 새로운 문학의 징후와 맥락이 기술돼 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구석구석 정성이 담긴 다채로운 편집부분이다. 문학사를 다루면서 연대기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장마다 10년 단위로 국내외 주요 사건 연표와 개괄적인 해설을 주어 문학의 탄생배경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왔고, 곳곳에 가능한 한 모든 자료사진을 배치했다. 본문에서는 1년 단위로 작가와 문학사조, 문단의 흐름을 살펴보고 주요문학작품과 문인들의 생애를 아울렀고 각 장이 끝나는 곳에는 본문에서 인용-발췌한 글의 출처와 참고도서 목록을 수록했다. 책 말미에는 충실한 ‘찾아보기’(색인)까지 준비돼 있다.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아주 쉽게 서술돼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면 전문용어를 피하고 비전공자들도 알기 쉽게 썼고,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먹어치우듯 소화해낸 바탕으로 책을 다루는 장석주씨의 능란한 솜씨가 읽는 재미를 가져다준다.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지난 100년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도 결코 많다고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전5권)/ 장석주 지음/ 시공사 펴냄/ 각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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