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0

2000.06.29

가슴에 살아 있는 ‘한반도의 상처’

  • 입력2006-01-31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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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살아 있는 ‘한반도의 상처’
    처음 홍성원씨의 장편소설 ‘남과북’을 읽은 게 80년대 중반이니 서음출판사에 이어 문학사상사가 두번째로 펴낸 것이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출간 30년 만에 완전 개작된 세번째 ‘남과북’(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10여 년 전 이 소설에 빠져들어 허겁지겁 읽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우스운 것은, 소설 줄거리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탓에 헷갈려서 2권 읽다 다시 1권 들추고 3권 읽다 2권을 들추던 모습만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독자들로부터 비슷한 고충을 많이 들은 저자가 이번에는 각 권 말미에 주요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막상 첫권을 펼쳐드니 설경민 우효중 한상혁 모희규의 이름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6·25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처럼 생생하고 속도감 넘치게 묘사할 수 있는 이야기꾼도 없으리라.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저자는 이 작품에서 따로 주인공을 세우지 않았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도 모호하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에서 우리 모두 희생자였다는 것을, 30명이 넘는 주요인물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1940년 4월 전쟁 발발 직전부터 휴전이 되고 두 달 후인 1953년 9월까지 전쟁상황을 무대로 한 이 작품에는 한국전쟁의 시작과 끝을 기자의 눈으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고발하는 설경민, 진남포 지주의 자손으로 월남해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설경민 집에 머물게 되는 한상혁, 한상혁과 같이 월남했지만 동생의 참담한 비극을 가슴에 묻고 묵묵히 살아가는 실존적 인물 모희규, 학자이며 대지주의 아들이지만 결국 전쟁통에 거부가 되는 장사꾼 박한익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떠나는 우효중 등이 등장한다. 그밖에도 신동렬 로이킴 민관옥 박노익 변칠두 등이 크고 작은 사건으로 얽혀 들어가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작품이다.



    그러나 200자 원고지 9000매 분량이었던 것을 1만200장 분량으로 개작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문정길과 조명숙이라는 전혀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다. 문정길은 황해도 은율의 자작농 집안 출신으로 일제 때 공과대학을 나온 수재.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신학렬의 사회주의 단체 ‘북두성’에 가입하고, 나중에 정치보위부 서울지구 책임자로 활약하는 냉철한 사회주의 신봉자다. 남한 출신인 조명숙은 의전에 다니다 전쟁 중 간호사로 자원했다가 문정길을 만났고, 이들은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한다. 평생 이념적 동지관계를 유지한 두 사람은 휴전 후 위장부부로 남파된다.

    저자는 “서슬 퍼런 냉전체제에서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공평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서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 우리에게는 북한이나 인민군 대신 북괴와 괴뢰군만 있었다. 하지만 개작을 하게 되면 꼭 넣고 싶은 인물이 문정길과 조명숙이었다. 두 사람은 냉철한 지식인이요 신념에 가득 찬 사회주의자였지만 민간인 학살 등 전쟁의 광기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인간적인 면모를 갖췄다. 이 두 사람을 넣음으로써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한 것 같다”고 말한다.

    홍성원씨는 77년 이 작품으로 ‘반공문학상’을 받은 게 두고두고 가슴에 맺힌다. 반전(反戰)이라면 모를까 ‘남과북’은 절대로 반공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홍씨가 반공작가 1호로 지목됐다는 이야기를 재일동포로부터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세번째 ‘남과북’의 표지는 화가 임옥상씨의 ‘6·25후 김씨일가’(90년)라는 그림이다. 그림 속에 비어 있는 자리는 우리 가슴 한구석에 뚫린 구멍과도 같다. 소설 ‘남과북’은 이 상처를 어루만지는 대신 뿌리까지 후벼낸다. 그것이 상처를 슬쩍 덮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치유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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