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2

2000.02.24

“만화팬은 좋겠네”

  • 입력2006-07-24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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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팬은 좋겠네”
    언제부턴가 영화에 대해 ‘관심없다’ ‘모른다’고 하면 문화적 지진아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요즘은 만화가 바로 그렇다. “만화? 나 흥미없어, 애들이나 보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은 ‘구닥다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 시대에 만화는, 말 그대로 ‘트렌드’다. 최근에 나온 만화 관련 신간들의 양이나 질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선 박인하씨와 이재현씨가 나란히 펴낸 두 권의 만화평론집을 보자. 박인하씨의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 ‘순정만화는 여자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고 나이 서른 넘은 남자도 순정만화를 진지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소년만화 무협지 등 타 만화장르와 변별되는 순정만화만의 특장과 매력, 그리고 50년을 헤아리는 한국 순정만화의 변천사와 작가별 특성 분석 등을 일목요연하게 전개하고 있다.

    반면 이재현씨의 ‘만화세상을 향하여’는 보다 폭넓은 만화의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휴머니즘 작가로 흔히 알려진 ‘아톰’의 데츠카 오사무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제국주의 잔재를 짚어내는가 하면 순정만화의 동성애 소재론, 일본 요리만화 분석, 오세영 이희재 박흥용 등 한국 대표작가론, 정부의 만화탄압문제 등이 종횡무진 펼쳐진다. 단행본 출간을 위해 일관된 흐름으로 집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을 모으다 보니 ‘종횡무진’이 지나쳐 ‘들쭉날쭉’된 감도 없잖은 게 단점. 하지만 만화를 작법이나 내용분석의 대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현상의 유력한 반영물’로 읽어내는 저자의 독법은 그간 문화전반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해온 저자의 ‘공력’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언더그라운드 성격이 강한 만화무크지 ‘통조림’도 여섯 번째 책을 최근 서점에 선보였다. ‘졸라 절믄 만화가의 막대머근 이야기들 오호!’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그동안 주류 만화계와 거리를 두고 비상업적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들의 작품집이다.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잖아?” 라는, 다소 시비조의 권두언에서 읽을 수 있듯,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낯선 체험’을 선사한다. 기승전결을 찾기 어려운 스토리, 몇단계를 풀쩍풀쩍 뛰어넘은 듯한 내용 전개, 섹스와 폭력과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비틀기 꼬집기 긁어대기….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엽기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는 장면도 종종 눈에 띈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넘쳐나는 공간, 그야말로 ‘컬트’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모자람없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이 책은 첫장에 “19세 이상을 위해 만들었다”는 경고문을 ‘기꺼이’ 붙였다.

    양영순씨가 최근 펴낸 ‘기동이’는 스포츠 신문에 연재된 작품들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인 만큼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표지는 붙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재미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암만 해도 독자는 ‘알 것 다 아는’ 나이여야 싶을 듯하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늘 발가벗고 다니는, 똥배가 톡 튀어나온 3세 정도 아이 기동이와 그 가족. 이들은 근엄한 체, 고상한 체하는 기성 사회의 이면에 숨어 있는 동물적이고 구저분한 악취미적인 성향들을 풍자적으로 드러내준다. 그런 ‘폭로’를 위해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장치가 바로 나체, 똥, 과장적으로 커다란 콧구멍, 성기에 대한 가학적 표현 등이다.



    ‘누들누드’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섹슈얼 팬터지를 자유자재로 표현해낸 작가는, 정작 결혼하고 나서 “총각 때의 팽팽한 성적 긴장감을 잃어버려” 섹스 외의 소재를 폭넓게 찾아나서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동이’는 그의 그런 소재 넓히기가 얼마만큼 성공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누가 캔디를…’/ 박인하 지음/ 살림 펴냄/ 8000원

    ‘만화세상을…’/ 이재현 지음/ 푸른미디어 펴냄/ 7500원

    ‘통조림’/ 프로젝트409 펴냄/ 3800원

    ‘기동이’/ 양영순 지음/ GenaSona 펴냄/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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