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그 여름의 풍경

쇠라의 ‘아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입력2015-06-29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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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의 풍경
    요즘처럼 화창한 날 오후, 점묘화법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 Seurat·1859~1891)의 ‘아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감상하며 상상 속에서 프랑스 파리 센 강가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 그림은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쇠라가 그린 첫 대작입니다. 신인상주의란 찰나 순간을 포착하는 인상주의를 계승하면서 빛과 색채를 과학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예술 사조입니다.

    가로 3m, 세로 2m 정도로 거대한 화면에 노동자로 보이는 인물들이 고된 일과 후 아니에르의 센 강가에서 평화롭고 느긋하게 쉬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 화면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까지 대각선 사선 구도로, 왼쪽에는 강가의 푸른빛 풀밭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센 강이 흐릅니다.

    화면 정중앙에는 낮은 언덕에 걸터앉아 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윗옷을 벗은 채 화면 오른쪽 센 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그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있군요. 이 남자 얼굴은 앞 머리카락에 눈이 가려져 표정을 알 수 없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선은 대부분 센 강이 있는 화면 오른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왼쪽 하단에는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세로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비스듬히 누워 쉬고 있는 신사와 그의 바로 등 뒤에 앉아 있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신사는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흰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 구두를 신고 있어 중산층으로 보입니다.

    다시 화면 중심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붉은색 모자를 쓰고 물놀이를 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누구를 부르는 듯 두 손을 모아 입에 가져다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쇠라의 대표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처럼 중심인물 주변으로 군상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배경이 그림 상단의 3분의 1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거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의 굴뚝과 건물들이 죽 늘어선 공업도시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5km 떨어진 아니에르이며, 산업혁명이 일어나 빠른 속도로 곳곳에 공장이 세워지고 많은 노동자가 땀 흘려 일하던 시기입니다. 쇠라는 당시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동자들이 센 강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쇠라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흐릿하거나 무표정하게, 또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그립니다. 인물에서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쇠라 작품의 특징이며, 따라서 감상자는 인물의 감정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 감상자에게 인물들의 숨겨진 감정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화사한 색채와 안정된 구도로 아주 편안해 보인다는 점, 알 수 없는 인물의 감정 때문에 쇠라의 그림은 다소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쇠라는 파리 중산층 출신으로 신사 차림을 좋아하는 지적인 화가였고, 이 그림에서처럼 왕실 가족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중하층 시민의 모습을 이렇게 큰 화폭에 담는 일은 흔치 않았다고 합니다. 1883년 여름 살롱 회화용으로 ‘아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후 독립전(앙데팡당)에서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현재 이 작품은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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