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2014.06.23

김환기 화백의 삶과 예술 발자취

‘그림에 부치는 詩’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6-23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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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기 화백의 삶과 예술 발자취

    ‘그림에 부치는 詩’가 열리고 있는 환기미술관 전경.

    “만일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는 예쁜 예술작품에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을 테고, 그런 작품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에세이집 ‘영혼의 미술관’(문학동네)에서 이렇게 썼다. 삶이 우울하고 일상이 버거울 때 미술관에 가는 건 잠시라도 복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예쁜 예술작품’에 몰입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다행히 서울 곳곳에는 미술관이 있고, 마침 종로구 자하문로 환기미술관에서는 특별기획전 ‘그림에 부치는 詩’가 열리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수화 김환기(1913~74)의 유화, 드로잉, 구아슈(불투명 수채화), 콜라주 등 310점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 입구에는 수화가 그의 반려자 김향안 여사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모습의 사진 ‘김환기와 김향안, 1957, 파리’가 걸려 있다. 그로부터 시작하는 전시는 시종 이 사진만큼이나 다정하고 따스하다. 화가의 트레이드마크로 통하는 푸른빛 대작 점화(點畵)와 그가 평소 스케치북이나 수첩 등 여러 종이에 그린 드로잉 및 수채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곳곳에 수화가 남긴 편지와 일기도 전시돼 있다. 예를 들어 환기미술관 3층에 걸려 있는 구아슈 ‘향안에게’ 아래 적혀 있는 편지는 이런 내용이다.

    “맑은 광선에서 모처럼 과슈를 해보겠어. 어젯밤은 새벽 3시까지 그림(과슈)을 꾸몄지. 고무로 깨끗이 때를 지우고 다시 보니 참 아름다워요. 그림이란 참 재미나는 거야. 김환기”

    수화는 미국 뉴욕 진출 초기인 1963~64년,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보낼 편지와 그림일기를 다수 제작했다고 한다. 그중 일부가 이번에 대중에 소개되는 것이다.



    김환기 화백의 삶과 예술 발자취
    전시는 1950~60년대 작품을 모은 1부 ‘한국·파리시대의 구상적 드로잉’부터 ‘한국의 자연을 담은 과슈’와 ‘다양한 실험적 구도’를 거쳐 수화가 말년에 완성한 추상화법을 감상할 수 있는 ‘점·선·면의 울림’으로 이어진다. 화가의 삶의 여정을 따라 전시장을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고,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정갈한 문장들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미술관 안에는 줄곧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이 흐른다. 푸른색을 많이 사용해 시원하고 맑은 느낌을 풍기는 수화의 작품과 썩 잘 어울리는 선곡이다.

    다시 알랭 드 보통으로 돌아가자. 보통은 앞서 소개한 책에서 “예술적 경험의 가장 이상한 특징 중 하나는 가끔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이다. 그런 순간은 괴롭거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대면할 때가 아니라 특별히 우아하고 사랑스러워 보는 즉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작품과 마주칠 때 찾아온다”고 했다. 어쩌면 초여름 환기미술관에서 그림과 글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그런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8월 3일까지, 문의 02-391-7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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