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8

2012.12.24

한 꺼풀 벗겨보니 다 똑같더라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

  • 입력2012-12-24 0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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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꺼풀 벗겨보니 다 똑같더라

    ‘허니문 누드’, 커린, 1998년, 캔버스에 유채, 116×91,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남자는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뒷받침해줄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성격, 취향, 집안, 학벌 등 여러 요인을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맞춰보고 결혼을 결정한다. 특히 남자가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사랑이나 여자의 미모보다 장인의 능력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출세지향적 남자도 결혼만 하면 평범한 남자들과 똑같아진다. 오랜 시간 그토록 심사숙고했던 외부적 요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아내가 섹시하기만을 바란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욕망을 표현한 작품이 존 커린(1962~)의 ‘허니문 누드’다. 벌거벗은 여인이 오른손으로 풍만한 가슴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배를 지그시 누르면서 치아가 살짝 보이도록 입술을 벌린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남편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누드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다. 하지만 동그랗게 뜬 눈은 섹스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한다.

    아무것도 없는 검정색 배경은 여인의 아름다운 몸매가 돋보이는 구실을 하며, 팔을 들어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는 자세는 르네상스 시대 누드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이상적인 여성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여인의 벌어진 입술과 현대적 헤어스타일은 영화 속 영화배우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고전적 자세와 대비되면서 여인의 섹시함을 강조한다. 커린은 검정색 바탕에 젊은 여성의 누드를 배치함으로써 남자의 욕망을 나타냈다.



    예술계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으로 누드를 선택한 커린은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와 미국의 전설적인 삽화가 노먼 록웰, B급 드라마 주인공 오스틴 파워를 작품 원천으로 삼는다.

    커린의 예술세계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숙련된 회화 테크닉이다. 그는 화려한 테크닉으로 누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성적인 변화를 주어 고전적으로 보이지 않게 했다. 이 작품 역시 커린의 의도가 그대로 담겼는데, 완벽한 누드의 여성을 묘사함으로써 회화의 오래된 가치, 즉 회화 테크닉과 남성 욕망을 현대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남자는 신혼 기간 내내 눈에 콩깍지가 끼어 아내 외모와는 상관없이 아내가 영화배우처럼 섹시하다고 느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섹스에 열중하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고부터는 마음이 달라진다. 남자는 아내를 자신을 돌보는 어머니나 아이의 엄마로만 생각한다. 즉 남자에게 아내는 섹스하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생물학적 여자인 것이다.

    한 꺼풀 벗겨보니 다 똑같더라

    ‘살의 반영’, 새빌, 2002~2003년, 캔버스에 유채, 305×244, 개인 소장(왼쪽). ‘페니스’, 알트페스트, 2006년, 캔버스에 유채, 27×30, 개인 소장.

    여자를 생물학적으로만 표현한 작품이 제니 새빌(1970~)의 ‘살의 반영’이다. 벌거벗은 여자가 의자에 앉아 바닥에 놓인 거울을 향해 다리를 벌린 채 굳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닥에 놓인 거울은 여자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옆에 있는 거울은 여자가 기대고 있어 가슴과 옆얼굴을, 뒤에 있는 거울은 어깨 일부분과 여자의 뒷머리 부분만 보여준다.

    여자가 앉아 있는 의자는 보이지 않지만, 힘을 준 발등과 음부를 비추는 비스듬한 거울은 여자가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음에도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다리를 펴고 앉은 자세는 불편해 보이지만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이게 한다.

    꽉 다문 입술과 정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 그리고 묶은 뒷머리는 여자가 거울을 통해 음부를 관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자가 기대앉아 뒷모습만 보이는 거울은 세상에 그녀 혼자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새빌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에서 영감을 받아 여자 음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주제는 비슷하다고 해도,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유발한다면 이 작품은 오히려 관람객으로 하여금 상상을 억압한다. 여자의 굳은 얼굴과 적나라하게 묘사된 음부는 에로틱 환상을 배제한 채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임을 강조한다.

    새빌은 그림 주제로 여성 신체를 가장 좋아했는데, 특히 그는 신체의 구멍에 매료됐다. 이 작품은 신체의 구멍에 매료된 그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붉게 물든 음부는 흰색 피부와 대비되면서 시선을 끌어당기며, 거울 속 음부는 갈라진 음부 형태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새빌은 어린 시절 회전목마에서 떨어진 소녀가 다리 사이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흥분을 느낀 이후 신체의 구멍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신체를 사진이 할 수 없는 회화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남자는 결혼 생활 내내 아내에게 끊임없이 낮에는 살림 잘 하는 신사임당 같은 여자, 밤에는 섹시한 여자, 즉 ‘강남스타일’의 여자를 원한다. 반면 여자는 남편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이기를 바란다. 아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하지 않는다. 아내는 그것만이라도 잘하기를 바란다. 그저 평균치에라도 근접하기를 바라지만 남편으로선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중년 남자의 생물학적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 엘런 알트페스트(1970~)의 ‘페니스’다. 물감이 덕지덕지 쌓인 의자에 남자가 벌거벗은 채 정면으로 앉아 페니스를 드러내놓고 있다. 축 처진 페니스 위로 솟아오른 작은 털들은 페니스를 보여주는 남자가 중년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음낭 주름과 페니스의 접혀 있는 살은 페니스의 무게를 강조한다.

    엘런 알트페스트의 이 작품에서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된 페니스는 이상화된 누드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허벅지 위에 손가락과 의자 사이로 보이는 다리는 초상화가 가진 개인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작품은 남성 생식기 초상화다.

    남자와 여자 모두 살면 살수록 배우자가 자신의 이상형과 멀게만 느껴지게 마련이다. 실체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바꿔본들 달라지지는 않는다. 살면 다 똑같다. 인간 본성은 늘 한결같아서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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