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7

2012.10.08

못난 놈, 지질한 놈, 부실한 놈

명절 후폭풍

  • 입력2012-10-08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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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난 놈, 지질한 놈, 부실한 놈

    ‘부카드 박사의 초상’, 렘피카, 1929년, 캔버스에 유채, 135×75, 개인 소장.

    명절은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지만, 한편으론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가정주부에게 명절은 육체적 고통의 절정이자, 심리적으로는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감에 잠 못 드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들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한 ‘시월드’는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며느리가 당신 아들 덕에 편하게 산다고 생각해 시선이 곱지 않다. 며느리 역시 자신도 친정에서는 귀한 자식인데 시집에서는 종일 일만 하니 불만이 많다. 게다가 시월드가 끊임없이 무시한다는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잘나면 시월드 스트레스를 충분히 참아낸다. 여자에게 잘난 남자란 수입이 많은 남자다. 여자는 남편의 꿈을 원하지 않는다. 여자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높은 연봉이다. 꿈과 이상은 남자 몫이다.

    여자가 원하는 완벽한 남자를 그린 작품이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의 ‘부카드 박사의 초상’이다. 깃을 세운 흰색 옷을 입은 부카드 박사가 시험관을 들고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부카드 박사는 외과 의사이자 학자다. 트렌치코트 형태의 흰색 옷은 의사 가운을 나타낸다. 깃을 세운 것은 방금 풀을 먹여 다림질을 끝낸 옷임을 짐작케 하며, 푸른색 셔츠와 매치한 넥타이는 박사가 멋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뒤로 단정하게 넘긴 머리와 잘 다듬은 콧수염은 박사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걸 암시한다.



    손에 든 시험관 속 노란색 액체는 부카드 박사가 만든 신약 락테올이다. 부카드 박사는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설사 치료제 락테올을 개발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왼손으로 잡고 있는 현미경은 박사가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기하하적인 배경과 모노톤의 색채는 부카드 박사의 강한 개성과 냉정한 성격을 돋보이게 만든다. 렘피카는 색상을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상류층 인사들의 개성을 부각한 독특한 스타일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다. 부카드 박사는 렘피카와 2년 계약을 맺고 자신과 아내 그리고 딸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명절날 여자의 적은 시월드가 아니라 남편이다. 시집식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주방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는 아내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밥상, 술상이 필요할 때만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저런 인간을 믿고 평생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스럽기만 하다.

    여자는 남편에게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집안일을 자주 도와주는 자상한 스타일이면 된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블라디미르 예고로비치 마코프스키(1846~1920)의 ‘잼 만들기’다. 남편은 의자에 앉아 과일 씨를 파내고, 아내는 무쇠 난로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그릇을 휘젓고 있다.

    나무로 지은 조그만 집과 손질이 전혀 안 된 넓은 마당에서 시골 살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남자 앞에 있는 작은 탁자는 집에 부부만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남편 뒤쪽 작은 나무둥지에 걸린 수건은 더운 날씨를 암시하지만 청명한 하늘과 색이 약간 바랜 나뭇잎이 가을임을 말해준다. 부부가 잼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부는 잼을 만들면서 겨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숟가락으로 잼을 휘저으면서도 시선을 남편에게 고정한 아내의 모습은 집안일을 하는 남편을 믿지 못하는 아내 심리를 반영한다. 반면 남편의 시선은 과일 씨에 쏠려 있어 집안일을 하는 자신에게 만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코프스키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처럼 가난한 사람의 행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아내는 돈 못 벌고 자상하지 못해도 남편이 밤일만 잘하면 만족한다. 매일 밤 천국에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밤을 천국으로 만드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1475~1534경)의 ‘피에트로 아레티노의 체위 1~16가지의 성교 자세에 실린 삽화’다. 침대에서 남자가 두 팔로 여자 상체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고 있다. 여자는 한 손으로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있다. 팔과 다리가 서로 얽힌 모양은 두 사람이 옆으로 누운 채 섹스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침대를 둘러싼 천은 밤을 의미하며, 천이 묶여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성적 결합을 상징한다. 늘어진 천과 주름투성이 침대시트는 두 사람이 섹스를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남자 얼굴과 달리 여자 얼굴빛이 흑색인 것은 여자가 성적으로 만족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왼쪽 머리에 월계수 잎으로 만든 관을 쓰고 있는 조각상은 아폴로 신(神)을 상징하는데,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하는 모습은 신도 섹스를 하는 인간을 질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에 가려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조각상은 여자의 남편을 암시하는 것으로, 섹스를 하는 두 남녀가 불륜 사이임을 의미한다.

    명절이 지나고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면 당신은 못난 놈, 지질한 놈, 부실한 놈 3단 콤보다. 중년에 이혼당하고 싶지 않으면 일단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로 변신하라. 그게 가장 쉽다. 중년 남자에게 돈과 밤일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다.

    못난 놈, 지질한 놈, 부실한 놈

    ‘잼 만들기’, 마코프스키, 1876년, 캔버스에 유채, 33×49,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왼쪽). ‘피에트로 아레티노의 체위 1~16가지의 성교 자세에 실린 삽화’, 라이몬디, 1525년, 동판화, 소장처 미상.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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