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5

2011.12.05

괴물은 왜 밤마다 女人을 찾아오는가

행복한 휴식, 잠

  • 입력2011-12-05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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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은 왜 밤마다 女人을 찾아오는가

    ‘악몽’, 푸즐리, 1781년, 캔버스에 유채, 101×127,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건강을 지키려면 잘 먹는 것뿐 아니라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 숙면이 혹사한 몸을 회복해주는 덕분이다. 우리는 삶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내지만 매일 밤 숙면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많아서 선잠을 자거나 꿈을 꾸기 때문이다.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1774~1833)의 ‘이리스와 모르페우스’는 꿈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스·로마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데 꿈의 신 모르페우스는 외모나 목소리, 그리고 걸음걸이까지 완벽하게 사람을 흉내 내면서 사람들의 꿈에 나타난다. 모르페우스의 집에는 상아로 만든 문과 뼈로 만든 문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가 상아로 만든 문으로 나오면 기억에 남는 꿈을, 뼈로 만든 문을 나오면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모르핀이란 말도 꿈의 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고대의 그림을 보면 모르페우스 주변에 양귀비가 있다.

    ‘이리스와 모르페우스’를 보면 모르페우스가 침대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다. 어린 천사가 구름 위에 앉은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를 안내한다. 이리스는 헤라 여신의 명을 받고 모르페우스를 깨우러 온 것이다. 헤라 여신은 지상세계가 모르페우스로부터 벗어나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무지개를 만든 뒤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신들의 전령인 이리스를 보냈다.

    게랭은 이 작품에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그는 그리스신화를 통해 현실적 아름다움을 초월한 이상의 세계를 표현했다. 게랭은 작품 활동 초기에 역사적 사건을 주로 다뤘으나 후기에는 고전 신화를 연구해 그림 주제로 삼았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은 위장된 소원의 실현이며, 억압된 성적 욕망의 발현”이라고 했다. 무의식 세계에 있던 욕망이 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의식 속 욕망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 요한 하인리히 푸즐리(1741~1825)의 ‘악몽’이다. 푸즐리는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극심한 질투에 시달렸다. 질투심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 여인과 몸을 섞는 꿈을 꿨고 그러한 체험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 뒤에 푸즐리가 그린 소녀의 미완성 초상화는 그가 짝사랑한 여인으로 ‘악몽’의 탄생 배경을 설명한다.



    여인은 상반신을 침대 밖으로 떨어뜨린 채 누워 있다. 잠을 자면서도 괴로운 듯 목과 두 팔이 젖혀져 있다. 배에 작은 괴물이 올라타 정면을 노려보고 있다. 침대 뒤 커튼 사이로 커다란 말이 얼굴을 내밀어 여인을 바라본다. 눈동자 없이 흰자위만 보이는 말이 작은 괴물을 태우고 왔다. 괴물은 밤의 방문자다.

    이 작품에서 반은 원숭이며 반은 악마인 작은 괴물은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몽의 힘을 상징하는데, 이 괴물은 여인이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커튼 뒤 말은 프랑스와 독일의 민간 전설에 등장하는 몽마다. 전설 속 몽마는 땅속 깊은 곳에 사는 사악한 존재. 말은 이 작품에서 악마다. 말의 눈동자가 없는 것은 뒤러의 ‘기사와 죽음과 악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악몽을 암시한다.

    ‘악몽’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 그리고 실제 이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최초로 관념을 묘사한 것으로, 낭만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꼽힌다. 푸즐리는 문학과 연극에 심취해 고대 신화 및 종교를 주제로 특이한 분위기의 작품을 남겼으며 ‘악몽’으로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잠을 길게 잔다고 피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많이 자면 잘수록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일쑤다. 낮잠이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없애주는 이유는 짧지만 달콤한 수면을 취하기 때문이다. 낮잠은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기억력까지 높여주기에 스페인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권장한다.

    괴물은 왜 밤마다 女人을 찾아오는가

    (왼쪽)‘이리스와 모르페우스’, 게랭, 1811년, 캔버스에 유채, 251×178,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시 미술관 소장. (오른쪽)‘낮잠’, 루이스, 1876년, 캔버스에 유채, 88×111,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낮잠으로 일상의 피로를 푸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존 프레더릭 루이스(1805~1876)의 ‘낮잠’이다.

    귀부인이 소파에 잠들어 있고 화면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에는 하얀 백합과 새빨간 양귀비가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방 안의 가구를 비롯해 소파에 놓인 부채 등도 상당히 동양적인 분위기가 난다.

    녹색 커튼이 따사로운 햇살을 차단하고 있지만 여인 머리맡 쪽 창문은 살짝 열려 있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바람은 여인이 잠을 자는 이유를 설명한다.

    루이스는 이 작품에서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을 양귀비로 표현했는데, 빨간 양귀비는 꽃말처럼 영원한 잠을 의미한다. 그는 극적인 효과를 주려고 양귀비와 흰 백합을 꽃병에 함께 그려넣었는데 백합은 이 작품에서 서구 문화가 엿보이는 유일한 대상이다. 백합은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이다.

    *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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