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2007.09.18

탁재훈 방송인? 영화인?

  • CBS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기자

    입력2007-09-12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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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재훈 방송인? 영화인?
    탁재훈은 방송과 영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탁재훈은 탁월한 재능을 가진 방송인이다. 가수로 출발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지금은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예능인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유행어도 여러 개 만들어냈으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특급 게스트이자 MC로 시청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생활도 모범적이다. 콤비를 이뤘던 신정환이 불법 도박 문제로 곤욕을 치렀을 때 그는 무결점 방송인으로서 주가를 올렸다.

    탁재훈의 마당발 활동은 영화 장르에서도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첫 주연작 ‘내 생애 최악의 남자’ 개봉을 앞둔 그는 “20년 한을 이제야 풀었다”고 말한다. 배우에 대한 갈증을 풀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탁재훈은 영화로 연예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영화인’이다. 1988년 영화 스태프로 일을 시작해, 군 제대 후 93년 처음 연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탁재훈에게 온전한 배우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우연한 기회에 가수로 데뷔한 탁재훈은 “그동안 영화를 잊지 않고 있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유명세를 등에 업고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 ‘누구나 비밀은 있다’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 등 7편의 영화에서 감칠맛 나는 카메오와 조연 연기를 펼쳤다. 또 제작 예정인 두 작품에도 주연급으로 캐스팅된 상태다. 충무로가 탁재훈에게 기대하는 바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탁재훈을 영화인으로 보기엔 아직 부족한 듯하다. 방송에서 친숙하게 소비된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일종의 ‘스타 비이클(스타 이미지를 다른 장르나 작품에 차용하는 것)’로서의 모습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공식석상에서 탁재훈은 자신을 그냥 ‘탁재훈’이라고 소개하지만, 영화 관련 자리에서는 꼭 ‘영화배우 탁재훈’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 탓이리라.

    숨가쁜 일인다역 소화 정체성 고민



    가수와 MC, 매니지먼트 업체 사장, 의류사업 진출 그리고 영화배우까지. 탁재훈 자신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최근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그는 “이것저것 하다 보니 직업적 정체성도 없는 것 같고, 어느 것 하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시선도 받는다”고 자인했다. 하지만 탁재훈은 “그런 시선을 극복하려 많이 노력한다”면서 “몸은 힘들지만 정말 악착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탁재훈은 솔직했다. 그는 “방송과 영화를 병행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방송을 좀 쉬고 싶을 때는 ‘영화 몇 편 출연하더니 변했다’는 말을 듣고, 방송에만 집중하다 보면 ‘원래 방송을 하던 사람이니까’라는 시선을 받는다”고 했다.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의 그를 키운 것은 90% 이상이 방송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집단 토크의 일원으로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단독 MC로서는 힘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방송 PD들은 강호동 유재석 김용만 신동엽을 메인으로 하는 경우는 있어도, 탁재훈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데는 망설이는 분위기다.

    영화로 넘어와서도 ‘방송인 탁재훈’의 이미지는 장점이자 약점으로 작용한다. 2~3초에 한 번씩 웃음이 터지게 만들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 속성상 끝없는 순발력과 리액션으로 단련된 탁재훈은 영화에서도 본능적으로 이 같은 관성을 보인다. 게다가 카메오를 시작으로 유머러스한 조연급이 된 탁재훈은 몸에 밴 애드리브 강박증이 있다. 이것은 다른 개그맨 출신이나 예능인이 가진 공통된 아쉬움이다. 주연 영화배우에게 이런 면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본인도 인식하는 이 같은 정체성 문제는 결국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다. 영화배우로 진정한 평가를 받고 싶다면 자신에 대해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 연기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획성 코미디 영화에 주연을 꿰찼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연기에 목숨 걸고 전력투구하는 무명배우들이나, 열심히 찍었지만 통편집되는 바람에 시사회에 왔다 슬그머니 빠져나가 흐느끼는 배우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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