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9

2008.04.01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법정 버전

  • 손주연 자유기고가

    입력2008-03-26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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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법정 버전

    ‘데미지’

    어슴푸레한 빛이 뉴욕의 아침을 밝힌다. 성조기가 산들바람에 휘날리고, 아침 안개가 도시를 메운다. 뉴욕 관광엽서에나 등장할 것 같은 고요한 장면들을 비추던 카메라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 가서 멈춘다. 엘리베이터 문이 갑자기 열리고 피범벅이 된 여자가 등장한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가 끝나면 장면은 경찰 취조실로 바뀐다. 약혼자 살해 혐의로 체포된 여인을 비추던 카메라는 6개월 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그녀의 이름은 엘렌(로즈 번 분)으로, 로스쿨을 졸업하자마자 저명한 여성변호사 패티 휴즈(글렌 클로즈 분)에게 스카우트된다. 냉철한 완벽주의자인 패티 밑에서 억만장자 사업가 프로비셔(테드 덴슨 분)에 대한 민사재판을 준비하던 엘렌은 약혼자의 여동생 케이티가 사건의 핵심 증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패티가 케이티와의 관계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을 고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XTM이 3월10일 시작한 ‘데미지(Damages)’는 독재자형 여성상사와 신참 여직원이라는 인물구도 때문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법정 버전’으로 불린 화제작이다. 국내에서는 2월17일 지상파 방송사인 KBS가 더빙판 방송을 먼저 시작했지만, 시청자들은 XTM의 자막판을 더욱 반기는 분위기다. 스릴러의 경우 비중이 작은 음향효과라도 극의 분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조작으로 자신의 회사 근로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프로비셔에게서 배상금을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패티 이야기를 다룬 ‘데미지’의 제목은 손해배상금을 뜻하는 법률용어다. ‘소프라노스’와 ‘섹스 앤 더 시티’ ‘로마’ 등에서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은 연출자 알렌 쿨터가 총연출을 담당했다.

    ‘데미지’는 2007년 가을, 겨울 시즌 제작된 드라마 중 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 만족할 만한 평가를 얻은 몇 안 되는 작품이다. ‘타임’ ‘뉴욕 데일리’ ‘시카고 트리뷴’ 등 TV 드라마에 대해 유독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언론사로부터 9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얻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타임’은 ‘데미지’를 가리켜 “영혼을 사로잡는 전율의 법정 스릴러”라고 치켜세웠으며, ‘시카고 트리뷴’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한 뒤 적절한 시점에 터뜨리는 영리한 스릴러”라고 평가했다. 평단의 극찬에 고무된 FX 채널은 7월 시즌2를 방송키로 했으며, 세 번째 시즌도 미리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XTM의 한 관계자는 “‘보스턴 리갈’ ‘저스티스’ ‘로 앤 오더’ 등의 법정 드라마들이 한 에피소드, 한 사건으로 종결되는 옴니버스 구성을 택한 것과 달리 ‘데미지’는 하나의 사건이 13개 에피소드를 관통한다”며 “때문에 어느 드라마보다 흡입력이 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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