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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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에 몸이 단 장성택 ‘황금평-위화도’로 달려갔나

개발 착공식에 중국 천더밍 상무부장도 참석… 북한 적극성에 비해 중국은 떨떠름한 반응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4-01-20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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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적에 몸이 단 장성택 ‘황금평-위화도’로 달려갔나

    2011년 6월 8일 중국 단둥에서 열린 황금평-위화도 개발 착공 현장.

    2013년 12월 8일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이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끌려나간 당일, 북한과 중국은 중국 베이징에서 신의주-평양-개성을 연결하는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북한은 중국 투먼시와 온성섬(온성도) 관광개발구 조성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필자는 이 온성도를 2012년 3월 처음 찾았다. 당시에도 이미 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구와 마주한 지린성 투먼은 쌀쌀했다. 투먼 경제개발구 정부청사에 잠입해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취재에 성공한 필자는 더욱 위험한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언론인은 물론 일반 중국인 출입도 통제되는 북·중 최접경 지역이었다. 물론 이는 훌륭한 협조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는 한국 언론이 투먼 수용소 등 중국의 탈북자 송환 문제를 집중 비판하던 시기였다. 중국으로선 한국 언론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때였으므로 최접경 지역에 대한 취재가 당연히 반갑지 않을 터.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국경 표시 1m 높이 경계석

    협조자 안내에 따라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현장은 투먼 공안당국의 감시건물이 내려다보는 곳이었다. 건물 가운데 높은 전망대가 자리했다. 여기에 360도 전 방위를 살필 수 있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고 협조자는 전했다. 의심스러운 차량이나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공안요원이 출동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주변 마을에서 만난 현지인은 탈북자를 보면 곧바로 신고할 수 있는 전용 전화기를 집집마다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탈북자가 부지기수였지만 최근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지역까지 차를 몰고 갔다. 주차해놓고 어느 정도 걸으니 1m 정도 높이의 경계석 하나가 나타난다. 경계석엔 중국이라는 글씨와 숫자, 연도가 표기돼 있었다. 중국과 북한 국경을 구분하는 표지였다. 경계석 바로 옆에는 월경 금지 표시와 함께 북한 쪽으로 말을 건네거나 촬영하지 말 것 등을 고지하는 경고간판이 자리했다. 경계석과 경고간판 외에는 철책이나 철조망 등 월경을 막는 시설물은 전혀 없었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바로 국경을 넘는다. “내가 지금 든 발을 이렇게 내려놓으면 북한 땅을 밟는 거야”라고 장난스레 말하면서도 발을 디디진 않았다.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현장에서 ‘스탠딩’(기자가 현장에서 코멘트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최접경 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마이크도 달지 않은 채 경계석을 붙잡고 녹화에 임했다. 코멘트 역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이어갔다. 그렇게 ‘번개 스탠딩’을 마친 뒤 우리는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실적에 몸이 단 장성택 ‘황금평-위화도’로 달려갔나

    중국 투먼과 북한 온성도 경계선인 실개천(맨 위)과 인근 경고간판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작은 개천이 나타난다. 몇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얕은 실개천, 바로 북한과 중국 경계선이다. 이곳에도 불법월경을 금지한다는 경고간판이 북한과 중국 양측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북한 간판이 중국 것에 비해 더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그 개천 건너편 북한 땅이 바로 함경북도 온성군 온성섬, 즉 온성도였다. 땅이 비옥하고 벼와 옥수수가 잘 자라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당시 온성도는 옥수수를 따고 남은 대만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당시 필자 취재원은 북한과 중국이 온성도를 대규모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골프장을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서 대규모 관광단지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외지고 버려진 곳을 개발한다고?’한 해 전 6월 대대적으로 착공식을 가졌던 황금평-위화도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자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2년 5월 말, 당시 북한의 외자유치 기구였던 합영투자위원회의 중국어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홈페이지에 오른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5월 8일 날짜와 더불어 북한과 중국 인사의 서명식 사진이 올라 있었다. 합영투자위원회와 투먼시가 ‘온성도 종합이용개발 조인식’을 갖고 서명한 것이다. 개발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필자는 온성도 취재 화면과 합영투자위원회 홈페이지 사진을 활용해 북한과 중국이 황금평-위화도에 이어 온성도 개발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전했다.

    온성도는 이듬해 북한 발표로 주목받게 된다. 2013년 11월 하순 북한이 발표한 13개 지역 경제개발구에 포함된 것이다. 북한이 밝힌 개발구 명칭은 ‘온성섬 관광개발구’. 12월 장성택 숙청 사실을 공개한 다음 날에는 투먼시와 온성도 관광개발구 조성을 위한 계약을 체결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친중국파 인사인 장성택이 숙청된 후에도 북한과 중국 간 경제협력은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행동이었다.

    장성택 숙청 다음 날 온성도 개발 계약

    ‘북한과 중국이 접경 지역 섬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신호.’ 필자는 온성도 개발을 이렇게 해석했다. 북한과 중국 간 대표적인 섬 개발은 앞서 추진된 황금평-위화도 개발이다. 온성도는 두만강에 자리한 섬이고 황금평과 위화도는 압록강에 있는 섬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섬 가운데 가장 크고 황금평은 두 번째로 크다. 황금평 크기는 여의도 넓이의 3배 정도. 오늘날 황금평은 사실상 섬이 아니라 육지다.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섬에 퇴적물이 계속 쌓여 일부 지역이 중국 땅과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중국 단둥에서 육로 통행이 가능하다. 황금평은 토지가 비옥해 신의주 지대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불린다. 북한과 중국은 온성도 개발에 앞서 2011년 여름 황금평-위화도 개발계획을 대대적으로 선포했다.

    2011년 6월 7일 필자는 이튿날로 예정된 황금평-위화도 개발 착공식을 취재하려고 베이징에서 단둥으로 향했다. 필자 관심은 특히 착공식에 참석할 인사에 쏠렸다. 20여 일 전인 5월 중순에 했던 보도 때문이었다. 당시 필자는 ‘5월 말 장성택 행정부장과 중국 천더밍 상무부장이 북한 나진·선봉 경제특구(나선특구)에서 만나 중국이 주도하는 북·중 공동의 나선특구 개발을 선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북한과 중국의 장관급 인사가 북한 원정리와 나진항을 잇는 도로포장 착공식에 참석해 나선특구 공동개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원정-나진항 도로는 중국 훈춘시와 이어진다. 다시 말해 도로포장 착공식은 단순히 북한 내 도로공사가 아니라 훈춘에서 나진항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연결하는 것이다. 나진항을 개발해 동북아 물류 루트를 확보하려는 중국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5월 30일로 예정됐던 원정-나진항 도로포장 착공식은 연기돼 열리지 않고 있었다. 그 직전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것을 들어 이 기간 양측 사이에 모종의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관측이 떠돌았다.

    6월 7일 필자가 탄 ‘차이나에어’가 단둥에 착륙하자 비행기 창밖으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였다. 정장 차림에 화환을 든 적잖은 사람이 활주로 주변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기내 귀빈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혹시 이 비행기에 천더밍 상무부장도 함께 탄 것 아닐까.’ 확인하려고 비행기 승무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천더밍 상무부장이 내렸나.” 앳돼 보이는 여성 승무원이 “조금 전 내렸다”고 알려줬다.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카메라맨은 급히 카메라를 꺼내 촬영에 들어갔다.

    공항 활주로와 귀빈들을 촬영하기 시작하자 중국 측 인사가 우르르 몰려나와 촬영을 막는 바람에 천더밍 부장 모습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이들이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덮어버리자 카메라맨이 신경질을 내며 한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필자는 곧바로 전화로 기사를 불렀다. ‘중국 천더밍 상무부장 황금평-위화도 개발 착공식 참석 위해 단둥 도착… 북한 장성택 행정부장도 참석할 듯’이라는 내용이었다.

    6월 8일 착공식 당일 행사는 황금평에서 열렸다. 많은 기자가 행사장 주변에 집결했다. 착공식 현장 내부는 기자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다. 주변에는 굴삭기와 트럭 같은 중장비가 즐비했다. 중국 쪽에서는 최고위급인 천더밍 부장이 참석했는데 과연 북한 측에서는 예상대로 장성택 행정부장이 참석할까, 관심사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나선 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 선언

    실적에 몸이 단 장성택 ‘황금평-위화도’로 달려갔나

    2012년 5월 8일 북한 합영투자위원회와 중국 투먼시가 가진 ‘온성도 종합이용개발 조인식’ 모습.

    당시 필자와 카메라맨은 대부분 한국 언론이 모여 있는 장소와는 다른 곳에서 착공식을 취재 중이었다. 우리 쪽에 높은 철탑이 있었다. 몇몇 주민이 철탑에 올라 망원경으로 착공식 현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좀 더 좋은 화면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카메라맨과 함께 철탑을 올랐다. 계단이 워낙 낡아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후들후들 떨면서 철탑을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리가 멀고 카메라 줌인에 한계가 있어 생생한 화면을 잡기는 힘들었다. 그 대신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행사 진행자가 착공식 참석자를 호명하며 장성택 행정부장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철탑을 내려와 현장에서 곧바로 기사를 불렀다. 장성택 행정부장 참석을 확인한 보도가 나가자마자 주중 한국대사관과 기자들로부터 확인전화가 이어졌다. 한국 기자 가운데 현장에서 장 부장이 호명되는 것을 들은 건 우리뿐이었다.

    착공식을 마치고 장성택 행정부장과 천더밍 부장 일행은 나선특구로 이동했다. 양측은 6월 9일 나선 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을 선언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는 이렇다.

    ‘북한과 중국은 나선 경제무역지대에서 나진항-원정 도로 개건과 아태 나선 시멘트공장, 나선시와 지린성의 고효율 농업시범구 등의 착공식을 개최하고, 나진항을 통한 중국 국내 화물 중계수송 출항식과 자가용차 관광 출발식을 선포했다.’

    이날 오후 북한 원정리로 들어가는 훈춘 취안허 세관은 붐볐다. 개별 승용차를 이용한 나선특구 관광 개시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기 때문. 중국인 90여 명이 차량 20여 대에 나눠 타고 처음으로 2박 3일간 일정으로 나선 관광길에 올랐다. 중국은 이처럼 나선특구 공동개발에 적극 나섰다. 간절히 원하는 나진항 때문이다. 하지만 절박함도 없고 필요성도 크지 않은 황금평-위화도 개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북한 측으로서는 큰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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