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9

2015.05.26

문제 없애고 조직 살리는 간명함의 원칙

짧고 단순한 업무지시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5-26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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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없애고 조직 살리는 간명함의 원칙

    미 육군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

    똑같은 업무지시를 해도 부하직원들의 성과는 천차만별이다.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때문이라면 보완할 수 있지만, 지시받은 업무를 이해하는 초기 단계에 문제가 있다면 훨씬 골치가 아프다.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군사전략의 가르침이 ‘간명함의 원칙’이다.

    군 조직에서 계획 작성과 명령 하달은 달리 보면 복잡한 것을 간결하게, 애매한 것을 명확하게 풀어가는 과정이다. 필자가 미국 워싱턴 외곽의 자택에서 만난,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계획 담당자였던 에드워드 로니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맥아더 장군의 작전지시는 항상 짧고 단순했다. 상륙작전 계획도 검은색 사인펜으로 인천에 화살표 하나 그려준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선 하나만으로도 계획은 충분히 천재적이었다.”

    군사적 관점에서 ‘간명함’을 정의하자면 ‘철저한 이해를 위해 명확하고 복잡하지 않은 계획과 명확하고 간결한 명령을 준비’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눈높이 사고를 하라는 의미다. 전략을 구상하는 장군의 사고영역과 전술을 실행하는 병사의 행동양식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좁힐수록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간명함의 중심은 계획자 혹은 발령(發令)자가 아니라 실행자나 수명(受命)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간명함의 원칙은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 미 육군 야전교범 ‘OPERATIONS(작전)’는 크게 3가지로 나눠 비법을 설명한다. 먼저 단순하고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상황 예측이 어렵고 위협의 실체가 복합적일수록 계획을 단순하게 작성하고,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해 명령을 내려야 한다. 시간 여유가 없거나 모두에게 상황과 계획을 충실히 전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잘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잘못 이해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전 상황에서 아군끼리 오해와 혼란은 적의 총알보다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군은 인지공학,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새로운 사조를 도입하려는 시도에 몰두했다. 이들의 주요 작전은 안보환경과 위협 특성에 따라 대테러 및 게릴라전에 집중됐다. 상대의 물리적 특성보다 심리와 의지를 읽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게 더 중요했다.

    이스라엘군 작전연구소는 2006년 전후로 인지공학, 심리학, 최신 디자인이론 등이 복합된 ‘작전설계(Operational Design)’라는 개념을 창안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호평을 받아 호주, 영국, 캐나다군에 이어 미군도 이를 상당 부분 차용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개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됐다. 실제 작전에 사용해보니 야전 병사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이고 적용 방법도 복잡했기 때문이다.

    계획과 명령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실현하려면 평소 교육훈련이 잘돼 있어야 한다. 군대에서는 계획과 명령을 간결하고 명확히 전달하고자 군사용어와 군사부호를 사용한다. 계획과 명령을 실현하기 위해 동일한 야전교범에 따라 전술훈련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훈련이 잘된 부대는 계획과 명령이 간결하더라도 지휘관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거꾸로 지휘관은 그런 부대를 신뢰할 수 있다. 부대의 능력을 신뢰하는 지휘관은 추가적인 지시나 개입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명한 격언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지휘관과 병사가 뜻을 같이 가지면 전쟁에서 승리한다)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계획을 수립하는 최초 단계에서 나오는 가장 중요한 산물은 ‘시간 사용 계획’이다. 프러시아(프로이센)군 태동기 군사학교 엘리트들은 의무적으로 ‘열차 편성 시간표 작성’ 과목을 수강해야 했을 정도다. 시간은 전장의 지배적 요소다. 공격과 방어를 불문하고 명시된 시간계획을 중심으로 기동과 화력의 복잡한 조합이 진행된다. 기동부대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움직이고 그 시간선을 기준으로 전방에 화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제때 움직이지 않으면 적이 살거나 자신이 죽는다. 군대 내에서 ‘제 시간에 실시된 간단한 계획이 늦게 시행된 구체적인 계획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군의 작전계획 작성과 명령 하달 과정에서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빼먹지 않는 절차 중 하나가 백그라운드 브리핑이다. 상급지휘관의 의도를 확인하고, 명시된 과업을 식별하며, 임무를 다시 한 번 되뇌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수차례씩 반복한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부하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미소 냉전시대 양국의 군비 감축 협상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했던 금언은 아마도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였을 것이다. 조직 구성원을 믿는 것과 그가 어느 정도 업무를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조직의 생리를 보면 아홉 번 잘하고 나서 한 번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는 알겠지’ ‘이만큼 얘기했으니 알아들었겠지’ 하고 넘어간다면 분명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이해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라

    석가모니가 영산회에서 꽃을 들자 그 뜻을 안 제자 마하가섭이 미소로 화답했다는 ‘염화미소’의 설화는 이심전심의 대표적 사례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복잡한 업무지시를 복잡하고 길게 설명하는 것은 하책이다. 복잡할수록 간명하게 지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상급자가 아니라 하급자 능력에 달렸다. 그러므로 평소 꾸준히 구성원의 능력을 키우고 상호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직장생활 속에서 시간을 쪼개 이런 노력을 기울일 수는 없는 노릇. 솔선수범은 이 경우에도 만능열쇠다. 평소 상급자가 간단한 용어를 사용해 명쾌히 업무를 설명하고 상대 처지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 자체가 부하직원들에게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될 테니 말이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작업이 후보계획을 만드는 일이다. 후보계획을 예비계획(Plan B)과 혼동하는 이들이 있지만,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후보계획은 목표가 달성돼야 할 시각부터 역순으로 시간계획을 세우는 일을 말한다. 즉 부하직원에게 어떤 업무를 완수하라고 지시할 때는 완수해야 할 시각으로부터 역순으로 시간대별 달성 과업을 명시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제때 해야 할 일이 누락되지 않는 시간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데드라인은 명확하게 사실대로 알려줘야 한다. 지시를 받은 사람이 주어진 일을 다해내지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해 데드라인을 앞당겨 알려주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런 일이 반복돼 구성원들이 으레 시간 여유가 있겠거니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계약이 코앞인데 “그거 며칠 더 시간이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같은 반문을 듣게 된다면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래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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