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2

2011.08.29

고착화한 사회 구조에 절망 폭동, 남의 일 아니다

토트넘 폭동과 젊은이들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08-29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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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착화한 사회 구조에 절망 폭동, 남의 일 아니다

    8월 7일 영국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발생한 폭동으로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다.

    8월 6일 영국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현지에서는 빈부격차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는 젊은이가 좌절 및 분노를 겪는 데다, 가족 해체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이런 폭력적 일탈 행동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맞는 얘기다. 폭동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불만 가득한 젊은이들이 마치 ‘울고 싶은데 뺨 한 대 맞은 격’으로 기존의 사회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볼 수 있다. 결과는 별로 생각지 않은 채 지금의 울분과 적개심을 마구 분출한 셈이다. 젊기에 가능한 얘기다.

    울고 싶은데 뺨 한 대 맞은 격

    필자는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일어난 이번 폭동을 예사롭지 않게 본다. 이유는 한 가지다. 대한민국 젊은이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상담하는 한 청년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매사 불안해하고, 가족에게 짜증을 잘 내며, 화가 날 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져 병원을 찾았다.

    그에게 내려진 정신과적 진단은 ‘불안장애’ 및 ‘간헐적 폭발성 충동장애’였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로 눈물겨웠다. 장사를 하는 부모는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그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방학 때면 각종 해외 어학연수 캠프에 아들을 보내곤 했다. 그도 그런 부모의 노력에 부응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모범적인 우등생이자, 착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더 잘 키우고자 부모는 학원 메카인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했고, 그를 인근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치른 중간고사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고, 어느새 공부 못하는 아이로 변해 있었다. 그와 부모는 당황했다. 더욱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자기가 모르는 학원 얘기를 하고, 특정 과외 선생님을 들먹이며, 서로의 집안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부모끼리도 서로 왕래하고, 어려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런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접근해봤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무시 또는 무관심이었다.

    차츰 부모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부모는 좋은 직업을 가지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가 내린 결론은 한 마디로 “나는 해도 안 돼”였다. 이른바 명문대가 아닌, 서울 소재 대학의 일어일문학과에 들어갔지만, 그나 부모가 원한 곳은 아니었다.

    1학년을 마친 후 군대에 다녀왔다. 복학을 앞둔 시점에 그는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상대로 폭력성이 나타났던 것.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더 그랬다.

    “도대체 일문과를 나와 무엇을 할 수 있고, 내가 대학 공부를 한들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뭔가가 있을까요? 어렵게 취직한다 한들 강남에 집 한 채 사고 중형 자동차를 굴릴 수나 있을까요?”

    그가 필자와 면담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을 작정이라 했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마당에 어떻게 아내와 아이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져갔다.

    평등함에 대한 콤플렉스

    고착화한 사회 구조에 절망 폭동, 남의 일 아니다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석한 대학생.

    “남들은 어려서부터 외고다, 유학이다, 의대다 해서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체계적으로 교육받는데, 내 부모는 그저 열심히 하라고만 해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가 뭔지도 몰라요. 대학을 안 나왔으니 당연히 모르겠죠. 그저 무식하게 장사나 했으니까요.”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때론 화가 치밀어오른다. 부모의 헌신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폄하하니 말이다. 부모도 속상해한다. 아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면서 이제 와 하는 말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게 했어야 하는데, 너무 욕심을 냈나 보다. 자식만큼은 장사를 시키지 않으려 했는데…”다.

    너무나도 서글픈 장면이다. 이 청년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점은 고착화한 사회 구조다. 아무리 발버둥치며 노력해도 올라가지 못할 그곳에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를 원망한다. 처음에는 자신을 그렇게 키우지 못한 부모를 비난한다. 시간이 흘러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 분노와 원망의 표적은 직접적으로 ‘그들’이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청년들이 어느 날 사소한 계기로 집단적으로 폭발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다음으로 필자가 치료한 환자는 아니지만, 평소 잘 알고 지내는 30대 청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는 결혼해서 두 살배기 딸아이를 키운다. 그 나름대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부업 삼아 글을 쓰며 전문 강사로도 활약 중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던진 말이 인상 깊었다.

    “제가 대학생 때 빌린 학자금을 갚겠다고 하니까 은행에서 놀라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없대요. 그런데 선생님, 제 능력으로 아파트 사고 우리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걱정도 돼요. 제가 이 정도 바라는 것이 욕심일까요?”

    필자는 “그 정도가 무슨 욕심인가. 당연히 직장생활 열심히 하고 저축해 아파트 한 채 사고 자식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그 청년은 비수처럼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아니에요. 선생님 세대나 가능했죠.”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이 우려된다. 그들은 부모와 선생님에게 대들고 있다. 이러다가 직장에서 상사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고, 나아가 국가의 법과 제도에 저항할지도 모른다. 통제받는 것을 모르고 자란 데다, 규율을 따른들 밝고 건강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도 말 잘 듣고 모범적인 사람 10`~20%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만일 모범생 역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 심정적으로 또래의 반항과 적개심에 동조한다면? 서둘러 그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서울 어느 동네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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