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5

2011.07.11

나약하고 기합 빠진 젊은이? 우린 그를 위해 뭐 했나

해병대와 최악의 총기사고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07-11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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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일 해병대에서 최악의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해병대는 제대 후에도 끈끈한 전우애를 자랑하는 조직이 아닌가. 이번 사건은 해병대의 슬픔이요, 치욕이다. 총기사고의 주범인 김모 상병은 무슨 이유 때문에 이토록 엄청난 행동을 저질렀을까. 김 상병 개인 사물함에서 발견한 메모에는 “내가 싫다. 문제아다”라는 내용, 특히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 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을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는 등 자책의 글이 담겨 있었다. 짧은 내용이지만 자신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싫다, 문제아다” 투사의 심리 반영

    이런 행동은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지 메모만으로 김 상병을 우울증 환자로 판단할 수 없지만, 여하튼 그의 정신건강 상태가 온전하지 못했던 점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해치려 했을까. 원한과 미움 때문이다.

    흔히 사람은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정신의학에서는 이 같은 정신적 방어기제를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잘되면 내 덕이오, 안 되면 조상 탓이다’라는 속담도 투사 심리를 내포한다. 투사가 심해지면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만들어낸다. ‘저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한다’ 내지는 ‘사람들이 나를 감시한다’ 같은 피해망상을 통해 열등감을 덮어버리려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하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공격할 수 있다는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증오의 대상은 한 사람으로 좁혀지게 마련이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전혀 이유 없이 증오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불친절한 말투를 보였거나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던 사람에게 피해망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을 보니,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는 왜곡된 현실 판단이 이뤄진다.



    피해망상 속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만일 김 상병이 이 같은 생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면 분명히 제1의 목표 대상자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그는 메모에서 학교에서 반항했던 자기 성격을 언급하고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질환 가운데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병이 있다. 말 그대로 권위 있는 대상, 즉 교사나 부모에게 반항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행동장애다. 적대적 반항장애 증상 판단기준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원한이나 앙심을 품는 행동을 자주 보인다’는 항목이 있다.

    그렇다면 김 상병은 어려서부터 적대적 반항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은 추후 군 조사와 정신과 전문 군의관의 감정이 이뤄져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류탄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그가 치료를 거부한 채 난동을 부리고 급기야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민간과 협조해 정신건강 챙기기 시급

    나약하고 기합 빠진 젊은이? 우린 그를 위해 뭐 했나

    7월 5일 해병대 총기사고로 4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번 총기사고에서 보듯 사병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정신건강 관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물론 지금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 상병은 이미 ‘관심 사병’으로 분류돼 사건 당일에도 소대장과 면담했다고 한다. 신병교육대 검사에서도 ‘정신분열 의심 증세’ 결과가 나왔다. 문제를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관리 측면에선 미흡했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와 심층적으로 상담하고 치료도 받았어야 한다. 그의 짧은 메모와 사고 당시 행적만으로도 ‘우울증’ ‘정신분열증(피해망상)’ ‘적대적 반항장애(아동청소년기)’ 등 세 가지를 진단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 번에 걸쳐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했다면, 좀 더 정확한 정신과적 진단이 내려져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을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과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사고를 100%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병리 증상을 감소시켜 사고 발생 비율을 줄이거나 사고 강도를 완화시킬 수는 있다. 부대장이 관심 사병을 정기적으로 면담하고 관리하는 것은 ‘멘토’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치료가 필요한 사병을 관리하기엔 역부족이다. 정신건강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민간 의료기관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정신과적 진료가 필요한 사람과 전문의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제안한다.

    실제 필자는 몇몇 현역 군인을 진료하고 있다. 부대장이나 간부 요원이 잘 협력해줄 때 그들의 치료 성과도 좋아진다. 현재 높은 수준의 민간 의료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군 자체의 의료 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군인은 총검을 사용한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훈련한다. 적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어느 정도 함양해야 한다. 그래서 군인은 건강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것 외에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

    어른들은 요새 젊은이가 워낙 편하게 자라 정신적으로 많이 나약해졌다고 탄식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탄식만 하고 있으랴. 눈앞에 보이는 젊은이의 나약함 또는 불안정함을 강인함과 안정감으로 바꿔줘야 할 사회적 책무가 기성세대에게 있다. 과거에는 “군대에 갔다 와서 사람 됐어” “수줍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내 성격이 군대 갔다 와서 확 바뀌었어” 같은 말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었다. 예비 사회나 다름없는 군대에서 조직 적응 방법과 업무 처리법, 그리고 인간관계를 터득하고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 분위기가 어디 그런가. 상하 계급이 명확하고,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는 군대라는 조직을 처음 접하는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군 제대 뒤 경험하는 세상도 완전히 새로운 사회다. 젊은이가 나약해졌다는 사실보다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사회가 너무 많이 변했다는 점이다. 개인의 변화보다 사회의 변화를 탓함이 더 타당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불구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 행복한 역동적 상태’라고 규정짓는다. WHO에서 강조하는 정신건강을 우리는 잘 챙기고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대한민국 구성원은 건강을 단순히 신체적 질병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신건강 챙기기’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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