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9

2009.06.09

막걸리 빚으며 마음의 ‘용수’ 뜨는 아이

‘자식 덕 보기’ ⑤

  • 입력2009-06-03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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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빚으며  마음의 ‘용수’ 뜨는 아이

    <B>1</B> 누룩과 고두밥을 고루 섞는 치대기 과정.

    교육이 전문화로 치달으면서 폐해도 크다. 배움이 가르침보다 먼저이고, 근본이어야 하는데 자꾸 그 반대로 흐른다. 전문가에게 의존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작아진다. 점점 배우고 싶은 것도 없어지고, 스스로 배울 힘도 잃어버린다. 덩달아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가르침은 배움에서 아주 보조적이다. 싱그럽게 성장하는 아이들이라면 자랄수록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굳이 배움과 일을 분리하지 않는다. 또한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자존감도 높아진다. 부모가 자식 덕을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본성에 귀 기울이고 이를 존중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다 보면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는다.

    이번 호에는 그렇게 엉뚱한 이야기를, 조금 특별하게 풀어보고 싶다. 바로 아이가 술 빚는 이야기다. 처음 이 연재를 기획하면서 내가 손수 막걸리를 빚어보고 이를 글로써 한 꼭지 정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작은아이 상상이가 모내기를 앞두고 나보다 먼저 술을 빚는 바람에 내용을 바꿔야 했다. 아이 생각을 좀더 생동감 있게 하기 위해 인터뷰 방식을 취한다.

    “술 빚을 때는 술에 집중”

    상상아, 이번에 술이 잘됐구나. 축하한다. 네가 술을 빚은 게 이번이 몇 번째지?
    “여섯 번째네요.”



    막걸리 빚으며  마음의 ‘용수’ 뜨는 아이

    청주 한 잔과 앵두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부자간에 술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빚을 때 몇 살이었지?
    “음, 아마 4년 전이니까 초등학교 5학년 나이쯤.”

    아이가 술을 빚는다면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어른들도 이해할 수 있게 너만의 동기를 설명한다면?
    “만화 ‘식객’을 보고 나서지요. 거기 보면 술 빚는 이야기가 두 편 나와요. 앞부분을 보고는 엄두가 안 났는데, 뒤에 나오는 ‘청주의 마음’에서는 술 빚는 과정을 사진으로도 설명해주니까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데요.”

    나는 네 엄마가 빚는 것도 봤고, 네가 빚는 것도 여러 번 봤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이런 초보자를 위해 너 나름대로 도움말을 준다면?
    “무엇보다 마음을 좋게 먹는 게 아닐까 싶어요. 즐거운 마음을 갖고 빚으면 된다고 봐요.”

    그동안 잘 안 된 적도 있었지?
    “네, 두 번이에요. 한 번은 자만감 때문이었어요. 처음으로 빚은 막걸리가 성공하고 두 번째로 할 때였는데, 너무 방심해서 술이 쉬어버렸지요. 그 다음번엔 온도를 재본다고 술독 안에 넣어둔 온도계가 깨지는 바람에 술을 버린 거고요.”

    나야 부모 처지에서 네가 술을 빚어주니 그 덕을 단단히 본다. 그런데 네 처지에서는 술 빚는 일이 성장에 도움이 되니? 술을 빚으면서 배우는 게 있다면 뭘까?
    “음, 첫째는 술이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를 느껴요.(웃음) 둘째는 발효가 뭔지를 조금은 알겠어요. 술독 안의 온도가 30℃가 채 안 되는데도 술이 부글부글 끓어요. 보통은 물에다가 소금이나 설탕을 첨가하면 끓는 온도가 100℃를 넘어가거든요. 그런데 술은 물에다 고두밥과 누룩만 넣는 건데 참 신기해요. 셋째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제 마음을 컨트롤하는 걸 배우죠.”

    “기회 되면 판매도 … 술은 약이라 생각”

    그래? 마음 이야기는 아주 뜻밖이구나. 마음을 다스린다는 건 어른들도 쉽지 않은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볼래?

    “술을 빚을 때는 늘 좋은 마음, 깨끗한 마음,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술 빚는 동안 언제나 이런 마음을 가지기 어렵거든요. 안 좋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럼 최대한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안 될 때는 그 순간만이라도 되도록 술에서 떨어져 있으려고 해요.”

    나는 네가 호기심에 한두 번 하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해마다 꾸준히 하는구나. 여러 번 술 빚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술을 빚을 때마다 다른 뭔가를 느끼니?
    “사람 마음이 무궁무진하듯 술도 그런 거 같아요. 빚을 때마다 맛이 다르거든요. 또한 빚을 때마다 잘되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그래서 요즘은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술을 빚을 때는 술에 집중하면서 술만 생각하려고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술을 어떻게 빚든 결국 술을 마시는 건 사람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좋은 술이 뭔지를 가끔 생각하게 돼요. 기회가 되면 제가 빚은 술을 팔고 싶기도 하고요.”

    막걸리 빚으며  마음의 ‘용수’ 뜨는 아이

    <B>2</B> 이양주를 빚고 있다. 단양주가 한 번 빚은 술이라면 이양주는 단양주를 밑술로 해서 한 번 더 빚은, 좀더 고급술이다. <BR> <B>3</B> 발효가 진행되면서 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Br> <B>4</B> 술이 다 끓었는지 아닌지를 라이터 불로 점검해본다. 발효 중이면 이산화탄소 영향으로 불꽃이 흔들리다가 꺼진다. <BR> <B>5</B> 이양주에 용수를 박아 위에 뜨는 맑은 술만 모은 청주. 투명한 흙빛이라고 할까. 단양주보다 알코올 도수도 높고, 술맛도 좋다.

    그래? 돈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물어보자. 요즘 막걸리가 ‘웰빙주’로 인기 있다는 거는 너도 알지? 일본에 수출도 많이 하고. 그런데 술 전문가는 아주 많다. 그런 점에서 네가 하는 술 빚기 역시 좀더 달라져야 하지 않겠니?
    “글쎄요. 막걸리가 인기 있는 건 좋은데, 너무 상업적으로 나가는 면도 있는 거 같아 아쉬워요. 저야 당장 팔기는 어렵겠지요. 아직까지는 부분적으로 엄마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대충 10년 정도 술을 빚어본다면 뭔가 오지 않을까 싶거든요. 판매는 잘되리라 봐요. 많은 양을 팔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음에 빚을 때는 향을 위해 말린 대추도 넣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또 이제부터 빚는 술은 그 가운데 한 병만이라도 장기 보관을 하고 싶어요. 병에다가 라벨을 붙여 술맛이나 향이 세월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고 싶거든요.”

    술 빚는 아이로서 술 마시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술이 약이라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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