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4

2022.08.26

“지난해 주의 줬는데…” 8조5000억 원대 외화송금에 은행권 긴장

금감원, 주요 은행 현장검사 실시… “이상 거래 3번째면 빨간불 들어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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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2-08-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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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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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억4000만 달러(약 8조7000억 원)에 달하는 수상한 자금이 해외로 송금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은행권을 대상으로 책임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 무역 거래 명목으로 대거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안을 ‘김치 프리미엄’ 현상을 이용한 신종 환치기로 바라보고 있다. 자금 세탁·대북 송금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국가정보원도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외화송금 정체는 신종 환치기?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외화송금 의혹과 관련해 시중은행에 대한 현장검사를 확대했다. 금감원은 KB국민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에 검사역들을 투입해 9월 첫째 주까지 현장검사를 마칠 예정이다.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 신고’로 시작된 수사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외화송금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 국내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후 수입대금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송금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그림 참조). 금융당국이 자금 흐름을 조사한 결과 홍콩(25억 달러)에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됐고 일본(4억 달러), 미국(2억 달러), 중국(1억6000만 달러) 순으로 뒤를 이었다. 다만 금융당국 조사가 계속되면서 발견되는 이상 송금 규모가 증가하는 만큼 추후 액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두 곳에서만 65개 기업이 수상한 거래를 한 것으로 조사했다. 대표, 사무실, 직원이 동일한 업체들이 연이어 관측되면서 거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업체 규모에 비해 해외 송금 규모가 월등히 큰 점도 관련 거래의 불법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신생 업체에서 대규모 거래가 발생하는 양상도 다발적으로 나타났다.

    뒷덜미가 잡힌 업체도 있다.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는 8월 11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중소기업 대표 A 씨를 포함해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4000억 원 상당의 외화를 일본에 송금하는 과정에서 허위 신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에서는 암호화폐 가격이 일본보다 최대 20% 비싸게 거래된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면서 수요가 많아졌지만 재정거래(차익거래)는 사실상 막힌 탓이다. 이 때문에 A 씨처럼 시세차익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나타났다. 해외에서 암호화폐를 매수해 국내 전자거래소 전자지갑으로 전송한 뒤 이를 국내에서 비싸게 매도해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해당 업체 외에도 다수 기업이 가상자산거래소를 끼고 거래한 만큼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신종 환치기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외환업무 취급 및 자금세탁방지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은행은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관련 사안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는데도 대규모 이상 해외 송금이 발생한 만큼 은행들의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8월 16일 “(이상 거래가) 첫 번째가 아니고 두 번째, 세 번째 있었으면 그때쯤에는 뭔가 빨간불이 들어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은행 측에 경고를 보냈다. 금감원은 다섯 가지 사안을 중점적으로 살피면서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다(표 참조).

    “민간사업체라 문서 검증 한계 있어”

    은행들은 이상 거래를 사전에 적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앞서 거론된 이상 해외 송금은 다수가 ‘사전송금’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수입 물품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 무역업체가 작성한 송장만 확인하고 대금을 지급하는 거래 방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민간사업체다 보니 해외 송금 관련 서류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 권한을 가진 관세청이 아닌 이상, 수입 물품의 통관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도 각자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초로 수출입 거래를 요청해온 업체에 대해서는 영업점이 현장 방문을 할 것을 권고했다. 외환모니터링팀을 신설해 외환 업무 모니터링 역시 강화했다. 하나은행은 무역업체가 자본금 대비 과도한 송금을 시도할 경우 현장 방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상반기에만 800조 원 이상 외화송금이 발생하는 등 해외 송금 규모와 빈도가 매년 증가 추세인 만큼 전체 거래에 대한 맞춤 대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은행의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은행 관리시스템에 대해 부정 여론이 일고 있는 만큼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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