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3

2022.08.19

더 기대되는 뉴진스의 내일

[미묘의 케이팝 내비]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미학적 세계관 담겨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2-08-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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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어도어에서 탄생시킨 걸그룹 ‘뉴진스’. [사진 제공 · 어도어]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어도어에서 탄생시킨 걸그룹 ‘뉴진스’. [사진 제공 · 어도어]

    뉴진스(NewJeans)는 샤이니, 에프엑스 등의 가장 뾰족한 작업물을 담당하며 이름을 알린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방탄소년단(BTS)의 하이브에서 레이블 어도어(ADOR)를 설립하고 처음 데뷔시킨 5인조다. 데뷔 앨범 발매 전부터 7편에 달하는 뮤직비디오 공개, 독자적 소통 플랫폼 등을 통한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팝송의 미덕과 소위 ‘좋은 취향’의 유려함, 각기 다른 매력을 모두 준수하게 구사하는 앨범 구성도 경탄할 만하다. 쏟아질 듯한 에너지도 싱그럽다.

    ‘자연스러움’ ‘솔직함’이라는 뉴진스의 키워드에 일단 수긍하지 않기 어렵다. 검은 긴 생머리와 분방한 차림의 다섯 명은 정말로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인 것 같은 느낌을 강렬하게 전한다. 1세대 아이돌을 떠올리는 이도 있는데, 1세대 아이돌 경험의 데자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 산업의 당연한 전제인 ‘매력적으로 세공된 인물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완벽한 인물들’이 다만 뛰어난 안목에 의해 발탁된 것으로만 보여서다. 데모 CD나 증명사진 봉투를 참조한 패키지, 개인 소지품 같은 가방, 지역 상권의 저예산 광고 페이지를 재현한 듯한 일부 레이아웃까지 오면 학교 앞에서 인쇄한 동아리 행사 책자 같은 착각마저 든다. 많은 아이돌이 일기장 형식 등으로 개인 내면에 접속하는 감각을 제공하려 하지만, 이 정도 실재감을 주는 패키지는 단언컨대 거의 없다.

    여성 기획자의 시선으로 가공된 소녀들

    대량생산매체를 해킹하다시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다는 테마는 민희진 특유의 미학적 세계관이다. 그것이 과거 작업에서는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한 ‘비주류 감성’의 인물이 주류 사회의 빈틈을 파고드는 형태로 드러났다. 뉴진스에게는 거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다. 그 차이는 결국 기획자다. 케이팝 걸그룹의 절대다수는 기성세대 남성에 의해 기획되고 수시로 그들의 환상에 복무하는 함정에 결부된다. ‘민희진 월드’의 환멸은 이와 무관하지 않기에, 빼어난 여성 기획자의 주도 속에서 해방감을 만끽한다.

    뉴진스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새로움은 우리가 손쉽게 외면하거나 망각해온 케이팝의 질문과 새롭게 마주하게 한다. 이것이 정말 있는 그대로의 뉴진스이고 ‘있는 그대로의 소녀’를 고스란히 상품으로 만들어도 좋은가. 자연스러움의 착시와 그 속에 담긴 소녀의 완벽함을 기성세대의 추억이 담긴 레트로로 포장한다. 윤리적 질문을 피해가기 어렵다. 심지어 극히 자연스럽고 더없이 완벽해 보이며, 레트로 역시 월등히 우아해 보인다. 문제적이라면 그 누구보다 문제적일 테다. 다시 그의 존재가 대답이다. 민희진이라서 괜찮다! 중년 남성의 환상을 향해 왜곡된 소녀보다야, 여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소녀가 압도적으로 윤리적이고 정당할지 모른다. 실제로 뉴진스의 모든 것은 소위 ‘남성적 시선’과는 질감이 확연히 다르고 새롭다. 다시 ‘민희진 세계관’이다. 예전부터 팬들이 질색할 요소마저도 밀어붙이던 힘, 탁월한 감각을 온전히 믿으며 주류의 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자신감이다.

    이만한 자의식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여성 크리에이터의 출현은 그 자체로 가슴 뛰는 일이기도 하다. 업계 극소수의 여성 대표 기획사 작품들이 여성 기획자 눈이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히 보여준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끝내 대중을 설득하고 파란을 일으킨 것은 뉴진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놀라운 신인 그룹의 내일이 앞선 질문들에 멋진 답을 보여주길 기대하게 된다. ‘민희진이 여성이기에’가 아니라 ‘민희진이기에’ 혹은 ‘뉴진스이기에’ 괜찮다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희망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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